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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의 여신 안네 소피 무터가 선사한 헌정, 추모의 실내악 무대

입력 2025-11-11 09:07   수정 2025-11-11 17:51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7번 Op. 97 ‘대공(Archduke)’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Op. 50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며(A la memoire d’un grand artiste)’


독일 바이올린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한 명 꼽으라 하면 주저 없이 떠올리게 되는 연주자가 있다. 바로 안네 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이다. 그녀는 유례없는 정확한 음정과 수려한 사운드를 만드는 매끄러운 보잉 테크닉으로 현대 바이올린 주법의 정점을 이루는 클래식 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루이 비통 재단의 2025 - 2026시즌 클래식 시리즈의 첫 공연은 바로 활의 여신 안네 소피 무터의 실내악 무대로 꾸며졌다. 무터와 함께 트리오 무대에 오른 베테랑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Yefim Bronfman)과 신인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Pablo Ferrandez), 두 아티스트는 이번 시즌 안네 소피 무터와 함께 트리오 프로젝트로 투어 중인 동반자들이다.



무터는 한결같이 안정적인 연주력뿐만 아니라 철저한 비주얼 이미지 관리에서도, 다른 어떤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의 추종을 불허하며 이른바 ‘여신 바이올리니스트의 원조’로 불린다. 어깨가 반드시 드러나며 몸매의 곡선은 한껏 살린 스트랩리스 드레스는 안네 소피 무터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이렇게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은 활의 여신이 강림한 모습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며 엄격한 클래식 무대를 글래머러스하게 바꾸어놓았다. 스트랩리스 드레스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안네 소피 무터는 악기와 신체 사이에 옷이 끼이는 걸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게 여긴다고 한다. 어깨 위에 바로 닿는 악기와 직접 교감하며 소리를 만드는 감각 역시 무터에게 중요한 포인트일 것으로 짐작된다.

무터는 이번에도 역시 화사한 꽃무늬가 박힌 스트랩리스 드레스 입고 무대 등장했다. 그녀의 옷차림은 루이 비통 오디토리움을 둘러싼 통유리 창 바깥으로 보이는 무르익은 가을의 풍경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평소 오케스트라와 함께 솔리스트로 무대에 설 때면 기립 자세로 악보 없이 연주하며 대담함을 펼치던 그녀는, 이번 실내악 무대에서는 다소곳하게 착석한 채 보면대의 악보를 주시하며 함께 한 파트너들과의 섬세하고 균형 있는 밸런스에 유의했다.

가을이 진하게 무르익은 10월 말의 프로그램은 피아노 트리오 문헌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작품,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Op. 97 <대공>과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Op. 50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며>로 꾸며졌다. 후자는 작곡가가 절친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곡으로, 애도의 정서가 짙게 스며 있어 가을의 정취와 잘 어우러졌다.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가 무대에서 이루는 완벽한 삼각 구도는 각 악기의 개성과 음색이 조화롭게 교차하며 사운드적 구조의 균형을 만들어냈다. 세 연주자의 균형감 있는 배치는 시각적으로도 안정감과 집중력을 불러일으켰다.



1부 순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Op. 97 <대공>. 파블로 페란데스의 첼로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리릭한 감정을 이끌어냈고, 예핌 브론프만의 피아노는 단단한 터치와 절제된 다이내믹으로 두 현악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피아노의 뚜껑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소리로 압도하기보다는 현악기의 호흡을 존중하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는 브론프만의 노련함이 인상적이었다. 빠른 템포에서도 결코 흐트러짐 없는 응집력은 세 연주자의 호흡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느끼도록 했다.

세 악기의 대화는, 테마와 변주로 구성된 차이콥스키의 트리오에서 변주가 거듭될수록 다채로운 분위기를 펼쳤다. 현악기의 격정적인 선율이 피아노의 따스한 울림과 맞닿을 때 곡 전체는 차분한 엘레지로 숙연해졌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서정과 비애가 교차하는 순간마다, 무터의 바이올린은 마치 오페라의 여주인공 연상시켰다. 고음의 바이올린 소리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아리아를 노래하듯 가느다랗게 떨리며 심금을 울렸다. 차이콥스키의 트리오가 전하는 ‘추모’의 정서는 이날의 계절감과도 절묘하게 맞물렸다. 곧 다가올 만성절(萬聖節)을 앞둔 파리의 가을은 추모의 분위기로 충만하다. 루이 비통 오디토리움 무대 위 안네 소피 무터의 화사한 꽃무늬 드레스는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아니라, 가을의 추모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정으로 다가왔다.

안네 소피 무터, 최정상 아티스트의 예술성과 사회적 영향력

현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며 세계 무대의 정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1976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열린 한 연주회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열세 살의 천재 소녀가 들려준 놀라운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고, 곧바로 그녀를 전폭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무터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표했으며, 맑고 순수한 음색과 흠잡을 데 없는 테크닉으로 큰 찬사를 받았다. 노란색 라벨의 데뷔 음반 자켓 속 진지한 표정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앳된 소녀의 모습은 지금도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 소녀는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 무대의 정상에서 음악적 진화를 거듭하며, 어느덧 데뷔 5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안네 소피 무터의 이름은 정교한 테크닉과 압도적인 음악적 카리스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등 고전 레퍼토리에서 보여주는 해석의 깊이는 그녀를 동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뚝 세웠으며, 동시에 진은숙,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존 윌리엄스, 토머스 아데스 등 현대 작곡가들의 신작을 꾸준히 초연하며 시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지금까지 무터를 위해 창작된 작품만 30곡이 넘는다는 점이 이를 잘 입증한다.

무터는 연주 활동 외에도 후학 양성에도 깊은 열정을 쏟고 있다. 1997년 설립한 ‘안네 소피 무터 재단(Anne-Sophie Mutter Foundation)’은 젊은 음악가들을 지원하며, 그녀가 직접 이끄는 앙상블 ‘무터스 비르투오지(Mutter’s Virtuosi)’는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교육과 연주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2022년에는 루체른 페스티벌 재단 위원회에 합류해 전통 있는 음악제의 예술적 방향성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무터는 네 차례의 그래미상 수상을 비롯해 프라에미움 임페리알레(Praemium Imperiale), 폴라 음악상(Polar Music Prize), 프랑스 예술문학훈장(Commandeur des Arts et des Lettres) 등 세계적 권위를 지닌 명예상들을 휩쓸며 예술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입증했다. 최근에는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와의 협업을 통해 고전과 현대, 순수 음악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그녀의 음악 세계는 늘 새로움을 향한 탐색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여정은 한 아티스트의 경력을 넘어 클래식 음악사의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파리=박마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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