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방안’(9·7 부동산 대책)에 따라 수도권 주택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선 가뜩이나 사업성 악화로 늦어지고 있는 주택사업이 더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장 지방 택지지구에선 보상 등 절차 지연으로 민간이 계약을 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미분양 증가와 지역 건설사 폐업 속에 수도권 지원 집중으로 지방 주택시장 환경이 더 악화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5일 택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사업이 진행 중인 지방 공공택지는 90곳, 181㎢에 달한다. 토지 부분 준공이 이뤄진 대구도남이나 광주신창 등을 제외하면 86곳은 아직 토지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비수도권 택지 개발은 지역 내 주택난 해소와 함께 국가산업단지 조성, 혁신도시 건설 등과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된다.
최근 지방 택지지구 사업 지연이 속출하고 있다. 오는 12월 토지 사용이 예정된 경북 경산대임지구는 최근 민간 건설사의 계약 해지가 잇따르고 있다. 167만㎡ 부지에 1만10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지만, 상당수 용지가 미매각 상태로 남았다. 도로와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 조성이 늦어지는 데다 사업지구의 98%가 문화재 발굴 지역으로 분류돼 사업 지연 가능성은 더 커졌다. 택지지구 개발 후 유령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아 주택용지를 분양받았던 민간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까지 나왔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주변 주거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토지비는 과도하게 책정해 결국 전체 사업이 좌초 위기”라고 지적했다.
사정은 다른 지방 택지도 비슷하다. 1만5000가구를 공급할 예정인 울산 선바위지구(184만㎡)는 사업계획 수립과 보상 절차가 늦어지면서 2030년이었던 준공 예정일이 2032년으로 미뤄졌다. 대구 연호지구(3800가구)도 보상 일정 지연 속에 공급 물량이 축소됐다. 강원 춘천 다원지구(4800가구)도 주택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주민 반발과 보상 지연 등으로 당초 2028년이었던 준공 일정이 늦어질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9·7 공급대책’으로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가구를 착공할 계획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민간에게 주택공급을 맡기던 관행을 벗어나 직접 시행을 맡기로 했다. 업계에선 인력과 재원이 한정적인 LH가 수도권 주택공급에 집중하면 상대적으로 지방에서 추진 중인 사업이 부실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방 건설업계는 악성 미분양 증가와 건설사 폐업으로 산업 생태계 붕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지방 ‘준공 후 미분양’은 2만2992가구로 지난해 말(1만7229가구)과 비교하면 33.44% 증가했다. 전체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의 지방 비중이 80%를 웃돈다.
준공 후 미분양은 건설사에 직접적인 재무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신용평가에서 ‘주의’ 또는 ‘경보’를 받은 부실 지방 건설사는 247곳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건설사(150곳)와 비교하면 100곳가량 많다. 2022년 114곳이었던 부실 위험 지방 건설사는 2023년 182곳에 이어 지난해 220곳까지 증가했다.
업계에선 비수도권 택지 사업 지연으로 그만큼 지역 건설업계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토지 사용 시기가 늦어질수록 금융비용은 급증하고 사업성은 떨어질 것”이라며 “수도권 주택 공급을 늘리는 업무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방 주택시장에 대해 소홀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시장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지방의 가격 하락세와 준공 후 미분양 적체 등을 고려해 지난달 ‘지방 중심 건설투자 보강방안’을 발표했다”며 “9·7 대책의 제도 개선 부분은 지방에도 동일하게 적용돼 공급 여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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