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국내 증시의 최고 스타는 단연 SK하이닉스다. 올 1월 2일 17만1200원이었던 주가는 11월 3일 62만원까지 치솟았다. 주가 상승률은 262%에 달한다. 11월 5일 인공지능(AI) 버블 우려로 증시가 급락했지만 하이닉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목표주가 100만원까지 등장했다. SK하이닉스가 얼마나 더 오를지 증권가의 초미의 관심사다.
◆조정장 오자 ‘줍줍’ 나선 개미들
코스피지수가 2.8% 하락하며 패닉에 빠졌던 5일. 그동안 국내 증시를 주도했던 대형 반도체주들이 장 초반 5% 이상 줄줄이 급락했다. 7개월 만에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됐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야수의 심장’으로 SK하이닉스를 사들였다. 단기 조정 국면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4.1% 떨어졌지만 SK하이닉스는 1.2% 하락하는 데 그쳤다.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420조원을 넘어섰다. 코스피 비중의 13%에 달하는 규모다. 조정장에서도 개미들의 선택은 하이닉스였다.
하이닉스 주가가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실적이 있다. 지난 10월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방한 이후 협력 기대감이 커진 가운데 3분기 호실적이 발표되면서 투자 심리가 고조됐다. 미래 실적 전망도 밝다. 증권가는 4분기 하이닉스의 매출이 약 2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년 동기 대비 약 35%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5% 늘어난 약 1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영업이익률은 47% 수준이다.
앞으로 실적은 더 좋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업계는 내년 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이 52%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연간 매출은 130조원, 영업이익은 70조원으로 예상된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디램(DRAM)과 낸드(NAND) 모두 재고가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생산되는 물량은 즉시 판매되는 구조”라며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선주문, 후생산 방식으로 사업 구조가 전환돼 회사의 기업가치가 재평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을 이끄는 핵심 동력은 AI 인프라 확장과 맞물린 메모리 채용량 증가다. AI 수요는 ‘스케일업(Scale-up)’ 단계에서 ‘스케일아웃(Scale-out)’, ‘스케일어크로스(Scale-across)’로 확장하며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케일업은 더 빠른 메모리를 채택하고 더 큰 서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해 성능을 향상하는 것을 말한다. 스케일아웃은 서버를 여러 대로 늘려 AI 학습 속도를 높이는 수평적 확장을 뜻한다. 스케일어크로스는 AI가 자동차 반도체 설계, 금융, 로봇 등 산업 전반으로 퍼지는 것으로 산업·시장·기기 간 광범위한 채택이 이뤄지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HBM 채용량이 급증하고 서버 DRAM과 eSSD 등 범용 메모리까지 고성능화가 진행되면서 전체 메모리 시장이 AI 특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수요뿐만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도 하이닉스에 우호적인 사업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의 증설 여력 부족이 이어지며 공급자 우위 시장이 굳어지고 있어서다.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P4 라인과 충북 청주에 위치한 SK하이닉스 M15 X 확장 라인 등 최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들은 대부분 HBM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 DRAM의 증설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메모리 수급을 위해 2~3년 이상의 장기공급계약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산업 구조가 ‘선수주·후증설’로 재편되면서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과거처럼 생산능력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객사로부터 장기공급계약을 먼저 확보하고 생산에 들어가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일반 DRAM 및 NAND는 신규 증설보다 선단 공정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수요가 많은 HBM 등 고수익 제품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엔 주요 고객사와 2026년 HBM4 공급 계약을 완료했다. 고사양 제품 공급이 확정됐고 가격과 물량도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동시에 장기 수익성을 확보했다”며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한 덕분에 경쟁사의 진입이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실적 성장과 AI 시장 내 견고한 입지를 근거로 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상향 조정하고 있다. 10월 말 흥국증권은 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75만원, 신한투자증권은 73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DB증권은 70만원, iM증권과 신영증권은 68만원으로 높였다. 교보증권은 목표주가를 90만원으로 11월 4일 제시했다. 하이닉스의 2026년 예상 실적 기준 PER이 8.1배로 삼성전자(11.4배), 마이크론(13.3배) 대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리레이팅 여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메모리 1위 기업으로서의 위상, 고객과의 협업 확대, 장기 물량 확보 등을 감안하면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 수준의 밸류에이션 적용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메모리 1위 기업이라는 위상과 고객사와의 협업 확대 및 장기 물량 확보 가능성을 고려해 목표주가를 올렸다”고 말했다.
SK증권은 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기존 9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2026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56조원에서 76조원으로 35% 올렸고 기업가치 평가 방식을 기존 PBR(주가순자산비율)에서 PER(주가수익비율) 방식으로 변경했다. 목표 PER은 11배로 제시했다. 과거 메모리 업종은 높은 실적 변동성으로 인해 기업가치 평가 때 PBR이 주로 사용됐으나 하이닉스는 최근 3년간 거시경제 흐름과 연동되지 않는 실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SK증권의 설명이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슈퍼사이클의 본질은 메모리 수요의 구조적 성장에 있는데 SK하이닉스가 그 중심에 있다”며 “장기 성장성과 실적 안정성을 모두 확보한 SK하이닉스에 PER 기반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메모리 사이클의 강도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으며 메모리 가격 상승이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점에서 주가 상승 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는 단순 메모리 기업이 아니라 AI 인프라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하이닉스의 HBM4 양산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HBM4는 속도와 전력 효율을 동시에 높인 차세대 메모리로 AI 서버 업체들이 이미 대규모 발주를 예고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청주와 경북 경산 공장에 신규 라인을 증설하며 공급 확대에 나섰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11월 4일 ‘SK AI 서밋 2025’에서 하이닉스의 차세대 메모리 로드맵을 공개했다. 곽 대표는 “내년부터 HBM4와 HBM4E(8·12·16단), 커스텀 HBM4를 순차적으로 선보이고 2029~2031년에는 HBM5와 HBM5E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차세대 모바일 D램 ‘LPDDR6’을 출시하고 2030년대 초에는 ‘LPDDR7’을 공개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고용량·고성능·고대역폭을 각각 강조한 AI-N D·AI-N P·AI-N B 등 3종의 AI-N 시리즈도 함께 공개했다. 곽 사장은 “엔비디아, TSMC, 오픈AI, 네이버클라우드 등과의 협업을 강화해 AI 반도체 시대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HBM뿐 아니라 eSSD, DDR5 등 고부가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며 “AI 투자 과열 우려와 거품론이 나오고 있지만 AI 초기 국면이라는 점을 살펴볼 때 하이닉스의 장기 성장성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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