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자산 1400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은 국내 증시 수급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매수 주체로 남느냐, 중립으로 돌아서느냐가 코스피지수 향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가 4200을 돌파한 직후 크게 출렁인 것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한도가 미리 설정한 기준을 넘어서며 ‘셀(sell·매도)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연초만 해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17.5%에 달할 것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올해 초 11%대에서 불과 10개월 만에 6%포인트 넘게 확대됐다. 2021년 말 이후 약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국내 주식 전략적자산배분(SAA) 목표치 14.9%에 허용 범위(±3%포인트)를 적용하면 상단이 17.9%다. 사실상 운용 한계치에 다다랐다. 시장에서는 코스피지수가 4300선을 넘어서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허용 범위를 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금운용본부가 리밸런싱(자산 재조정)을 검토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주식을 일부 매도하거나 신규 매입을 중단하고 채권·대체투자 등 다른 자산군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시장 변동성과 환율, 금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금운용본부에서 결정한다.
다만 리밸런싱은 의무 절차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코스피지수 급락으로 국내 주식 비중이 하단 밑으로 떨어졌을 때도 국민연금은 즉각 매수에 나서지 않았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시장 안정과 장기 수익률을 이유로 예외 적용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상단을 넘어서더라도 곧바로 매도하기보다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차를 두고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추가 매수가 중단되고 잠재 매물이 국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단기 상승장에 편승해 자산배분 전략을 바꾼 적이 없는 만큼 기금운용본부 내부에선 신중론이 여전하다. 단기 랠리에 맞춰 비중을 확대하면 향후 조정장에서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장기 분산투자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주식과 대체투자에서 꾸준히 수익을 내는 만큼 굳이 국내 시장에 집중해 변동성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큰 자산배분 결정을 자주 수정하면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일관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면적인 국내 주식 비중 확대보다는 허용 밴드 조정 등 미세 조정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3%포인트로 고정된 허용 범위를 ±4~5%포인트로 넓히면 급등·급락 국면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기금운용본부 고위 관계자는 “자산배분 전략을 재편하지 않더라도 전술적자산배분(TAA)에서 추가 허용하는 ±2%포인트를 적용해 상단을 높일 수도 있다”며 “이는 기금운용본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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