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7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과학기술 인재 확보 및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 방안'을 발표하기 직전 인근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을 전격 방문해 핵융합 실험장치 '케이스타(KSTAR)'를 둘러봤다. 핵융합은 고효율 에너지원이면서도 현재 상용 대형 원전과 같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이 발생하지 않아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미국 핵 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미 에너지부(DOE)도 민관 역량을 모아 핵융합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오늘 핵융합연 방문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이은) 탈원전 시즌2' 논란을 핵융합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사로 해석된다.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 또는 중수소와 헬륨3가 플라즈마 상태로 융합될 때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미래 발전소다. 태양의 핵융합 원리를 그대로 구현한다. 이 대통령이 이날 본 케이스타의 모체는 유럽연합(EU)가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다. ITER는 20세기 후반부터 EU가 개념설계를 했고 2007년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ITER 내 도넛 모양의 토카막에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넣은 뒤 3억도까지 가열하면 플라즈마 상태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ITER는 토카막과 블랑켓, 진공용기, 열차폐체, 냉각시설 등이 복합된 거대과학 시설이다. 토카막은 100만 개 이상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토카막의 주요 구성요소는 영하 269도(절대온도 4K) 환경을 구현하는 초전도자석이다. 토카막 내 초전도자석은 30여개가 필요한데 1개만 해도 무게가 400톤, 높이가 4층 건물에 달한다.

ITER는 20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200MW 규모 전기출력 생산을 목표로 한다. EU는 ITER를 완공하고 난 다음 1000MW(1GW)~2000MW(2GW) 규모 상용 핵융합발전소를 짓는 것을 최종 목표로 잡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 APR-1400의 발전 용량이 1400MW다. ITER의 계획대로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될 경우 대형 원전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 EU를 중심으로 일본 등이 수십 조원 이상을 ITER 사업에 공동 투자해왔다.
그러나 크고 작은 기술적 문제가 계속 발생해 상용 발전소 건설은 고사하고 ITER 건설 자체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EU는 올해를 ITER 첫 플라즈마 생성 원년으로 잡았으나, 최근 첫 플라즈마 생성 목표 시점을 2035년으로 10년 더 미뤘다.

이 대통령이 이날 관람한 케이스타는 ITER를 25분의 1로 축소한 실험장비다. 핵융합 서비스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경수 인애이블퓨전 대표가 국가핵융합연구소(현 핵융합에너지연구원) 소장으로 있을 때 케이스타 설치를 주도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말 한국성장금융과 함께 핵융합 기술 투자 유치 행사를 벌였다.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은 이날 행사에서 "핵융합은 탈탄소 시대 핵심 에너지원"이라며 "AI확대와 데이터센터 운영 등 대규모 전력수요 대응을 위해 핵융합에너지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부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을 할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이력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형 원전 확대에 일관되게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기후환경에너지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명시된 대형 원전 2기 신설 계획이 재검토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고리2호기 등 국내 대형 상용 원전 수명 연장이 보류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대형 원전은 이제 페이드아웃(Fade out) 시키고, 원전에 버금가는 고효율 청정 에너지원인 핵융합을 밀겠다는 의사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15일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핵융합 신규 연구시설 부지 공모 공고를 새로 냈다. 이른바 '핵융합에너지가속화를 위한 핵심기술 개발 및 첨단 인프라 구축사업'이다. 이 사업은 전남도청이 유치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에 있는 케이스타와 별개로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에 핵융합 연구시설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 연구시설은 2036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미국은 AI 전력 조달 수단으로 크고 작은 원전과 함께 핵융합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 미 DOE 장관은 지난달 '핵융합 과학 기술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BIG(Build Innovate Grow:건설하고, 혁신하고, 육성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새로 내놨다. 에릭 슈밋 전 구글 CEO가 이끄는 미국의 초당파 씽크탱크 SCSP가 이번 DOE의 로드맵 발표를 지원했다. SCSP는 지난해 '미국의 차세대 에너지 리더십을 위한 국가 행동계획'을 내놓으며 "미국이 2030년까지 핵융합이라는 미래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국에 기술 패권을 내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DOE는 상용화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ITER의 대형 토카막 방식과 달리 Z-핀치, 쎄타-핀치, 고출력 레이저 등 소형 핵융합 기술을 집중 개발해왔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로렌스리버모어연구소 등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역인 다수 산하 기관을 통해서다. 최근엔 제너럴아토믹스, 커먼웰스퓨전, 헬리온에너지 등 민간 기업과 스타트업의 핵융합 기술 개발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헬리온에너지는 GPT 시리즈로 전 세계 AI 시장을 평정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가 투자하고 있는 핵융합 스타트업이다. 커먼웰스퓨전과 헬리온에너지는 2030년 이전 핵융합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은 BEST, 영국은 STEP 등 이름의 핵융합 발전소 신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핵융합 기술 수준은 상용화 시점 기준 최소 10~20년 이상 뒤처져 있다는 것이 엔지니어링 업계와 과학계의 중론이다. 당장 산업 현장이나 대학, 연구기관에서 AI 가동을 위한 전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용화가 불투명한 핵융합 발전을 멀쩡히 쓰고 있는 대형 원전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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