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오션 전략’ ‘파괴적 혁신’ ‘EQ 리더십’ ‘디자인 싱킹’…. 오늘날 기업의 언어가 된 개념들은 대부분 한곳에서 출발했다. 바로 1922년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창간한 경영 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다. 현대 경영학의 흐름을 만들어 온 HBR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영 패러다임을 바꾼 대표 기사 30편을 엮은 책을 펴냈다. 국내엔 최근 번역 출간됐다. 단순히 유명 기사들을 모아놓은 기념집이라기보다 경영의 사상적 변화를 이끈 결정적 순간들을 압축한 ‘경영의 역사서’에 가깝다.
이 책의 백미는 경영을 움직여온 핵심 개념의 원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경영의 변곡점을 만든 개념들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어떻게 기업의 사고와 행동을 바꿨는지, 그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피터 드러커의 ‘자기 경영’, 대니얼 골먼의 ‘EQ(감성지능) 리더십’,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 클레이턴 크리스턴슨의 ‘파괴적 혁신’, 김위찬·르네 마보안의 ‘블루오션 전략’ 등 경영학 석사(MBA)과정 교과서로 자리 잡은 글들이 처음 등장한 순간의 맥락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론이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고, 다시 조직문화와 전략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이 30편의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지금은 상식이 된 전략과 프레임이 어떻게 기업의 행동과 시장의 사고를 바꿨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현대 경영의 지도가 그려진다.
책은 리더십, 전략, 마케팅, 기술, 교육, 인사 등 조직 경영의 전 영역을 포괄하며, 지난 100년의 경영 담론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왔는지를 추적한다. 하지만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오래전 제시된 개념들이 지금 경영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드러커의 자기 경영은 ‘워라밸’과 ‘자기 주도적 성장’을 고민하는 MZ세대와 맞닿아 있고, 에이미 에드먼드슨의 ‘심리적 안전감’ 논의는 하이브리드 업무 체제로 혼란을 겪는 현재의 조직이 직면한 문제들과 정확히 맞물린다.인공지능(AI)·우주 산업 등 최근 주목받은 영역도 책에 담겼다. 매트 와인지얼·메헥 사랑의 ‘상업적 우주산업 시대가 도래하다’, 나이절 토핑의 ‘탄소 제로의 미래’ 같은 글은 기업의 전략 방향성을 고민하는 경영자뿐 아니라 미래 변화를 읽는 일반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통찰을 준다. 30년 넘게 반복해 언급된 아이디어들이 2025년의 경영 환경에서도 계속 유효하다는 사실은 HBR식 문제 제기가 단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질문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HBR이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학술성과 현장성이 동시에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SSCI(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 등재 학술지로서의 엄정함을 갖추면서도 경영자와 실무자가 당면한 고민을 구체적인 사례로 풀어냈다.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며 온라인 플랫폼, 팟캐스트 등으로 확장한 점도 특징적이다. 지식 생산의 방식이 바뀌는 흐름 속에서 HBR은 더 넓은 독자층과 호흡하며 ‘경영 지식의 인프라’로 진화했다.
이 책은 이런 100년의 축적을 압축해 제시한다. 글 하나하나는 독립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전체를 읽다 보면 경영의 큰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조직은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고, 리더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혁신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이 시대를 넘어 반복된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경영 사상가들이 제시한 통찰은 단지 이론적 제안에 그치지 않고, 실제 기업의 전략과 성장 모델을 만들어온 지혜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불확실성이 일상화하고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지만, 이 책이 기업에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선명하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가, 조직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책은 100년의 시간으로 그 질문에 답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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