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을 제작해 왔던 외주업체 프리랜서 PD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프리랜서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PD였지만 업무상 자율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 법원 판단에 힘을 실었다. A씨는 B사에서 약 12년 9개월간 PD로 일했다. B사에서 제작하는 방송프로그램 촬영·편집 업무를 수행하는 계약직 연출 프로듀서로 일하는 내용의 위탁계약서를 작성한 뒤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근무했다.
A씨는 자신이 B사의 근로자로 일했다면서 퇴직금 6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B사는 "A씨는 도급계약을 체결한 프리랜서 PD 신분이었을 뿐 근로자성이 없어 퇴직금 청구권이 없다"고 맞섰다.

A씨는 B사 팀장 PD에게 프로그램 편집물의 업무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수정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업무상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근로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A씨는 B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줄곧 '인간극장'을 제작해 왔다.
B사는 팀장급 PD 1명, A씨를 포함한 연출PD 4명, 작가 3명, 조연출 3명, 취재작가 3명 등 총 14명으로 여러 팀을 이뤄 '인간극장' 제작진을 구성했다. 팀 구성은 팀장 PD의 권한이었다. A씨는 팀장 PD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인간극장 제작 관련 회의도 팀장급 PD 주관 아래 B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외부 촬영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팀원은 모두 회의에 참석했다. 전체회의에서 팀별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작업 일정과 과제도 보고했다.
A씨의 촬영·편집 일정은 B사의 업무상 필요에 따라 정해졌다. A씨는 이를 임의로 바꿀 수도 없었다. 영상물 가편집은 B사 내 편집실에서만 이뤄지기도 했다. 사실상 B사 편집실에 상주하면서 업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A씨와 B사는 별도로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 12년 9개월 동안 위탁계약을 이어 왔다. A씨가 사업자등록을 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데다 사업소득세를 납부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B사의 항소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단 A씨에게 퇴직금을 지급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항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프리랜서 PD와 '외주업체' 간 근로자성 분쟁이란 점에서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그간 방송사를 상대로 근로자성을 주장하는 사례는 다수 알려졌지만 외주업체에서 이와 유사한 분쟁은 드물었다.

이 PD 유족은 항소 끝에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2심 판결을 얻어냈다. 당시 재판부는 이 PD가 청주방송과의 종속적인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출퇴근 시간이 탄력적으로 운영됐지만 이는 PD라는 업무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일 뿐 정규직 PD와 다르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러면서 이 PD가 정상적으로 근무했을 경우 임금을 유족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PD뿐 아니라 기상캐스터 등도 방송국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로 분류되고 있다. MBC 기상캐스터로 활약했던 고 오요안나 씨는 다른 기상캐스터들 2명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다 유서를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회사 측 관계자들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 판단이 나와 논란이 됐다. 그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A씨를 대리한 손익곤 법무법인 인사이트 대표변호사는 "A씨는 팀장의 지휘를 받아서 업무를 수행해 전권을 가진 위치가 아니었고 자율성이 별로 없었다"며 "무엇보다 10년이 넘는 기간에 한 업체에 종속돼서 업무를 계속 수행했던 점이 (재판 과정에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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