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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만병통치' 비만약 시대 유감(遺憾)

입력 2025-11-07 17:22   수정 2025-11-08 00:26

인류가 등장한 이래 인간의 역사는 굶주림을 해소할 식량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농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은 시작됐다. 냉혹한 환경에 적응한 인간만 살아남자 유전자도 그에 맞춰 진화했다. 스물세 쌍의 사람 염색체 중 열여섯 번째에 있는 체지방·비만 유전자(FTO)는 그 흔적 중 하나다. 몸속에 들어온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저장해 추운 겨울에도 생존하도록 도왔다. 서양인은 70%가량이 이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은 그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랜 진화의 결과물이 인종 간 체형을 결정지었다고 분석하는 배경이다.

한때 ‘축복’ 같았던 FTO 유전자가 이제는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문제아’가 됐다. 비만이 미덕인 시대를 넘어 질병인 시대가 도래하면서다. 18세기 중반 시작한 산업화·도시화 혁명은 진화를 거스르는 ‘신인류’를 낳았다. 소설가 박민규의 통찰처럼 현대인은 뛰어야 할 곳에서 걷고, 서 있어야 할 곳에서 뛴다. 자동차와 엘리베이터는 뛰고 힘을 써야 겨우 도달했을 곳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닿게 해줬다. 운동량이 줄고 먹을 것이 풍족해지자 나날이 불어나는 살을 빼기 위해 좁은 러닝머신 위에 올라 쳇바퀴 돌리듯 뛰는 게 일상 속 풍경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질병이라고 선언한 것은 1997년이다. 당뇨, 심장질환 등에도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21세기 신종 감염병’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수십만 년간 서서히 만들어진 인간 진화의 산물은 이젠 천덕꾸러기 신세다.

모든 게 풍족하고 넘쳐 시작된 ‘리버스 진화’ 시대.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게 건강한 여생의 보증수표가 됐지만 인간의 몸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진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기술은 빨랐다. 혈당은 낮추고 포만감을 높이는 ‘인크레틴’ 호르몬을 흉내 낸 신약 기술이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다. 이들은 위를 잘라내는 수술로만 도달할 수 있었던 ‘마의 10%’ 체중 감량률을 넘어선 최초의 비만약이다. 당뇨는 물론 심장질환, 수면무호흡증, 치매, 지방간 등 인류의 난제를 하나둘 해결하고 있다. ‘만병통치약’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열풍을 넘어 광풍이 된 비만약은 산업도 키웠다. 갑자기 살이 빠진 탓에 얼굴이 쳐지고 주름이 많아지는 ‘위고비 페이스’를 해결하기 위해 피부·성형외과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살 빠지는 약’에 대한 관심이 ‘헬시플레저’(즐겁게 하는 건강관리) 유행과 만나면서 ‘러닝 열풍’, ‘혈당스파이크 조절 식단’ 등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게임체인저’ 비만약이 진짜 세상을 바꾼 것이다.

혁신 기술의 파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돈벌이에 치중한 일부 의사의 일탈과 만나 마르고 싶은 이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날씬한 여성들이 더 날씬해지기 위해 찾는 선택지가 됐다. 매달 50만원가량을 지출하며 ‘만병통치약’을 손에 쥔 사람들의 상당수는 ‘질병 치료’보다는 ‘아름다움’을 위해 소비한다. 건강보험 지원을 못 받는 비급여 의약품인 탓에 이마저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약을 개발한 제약사도 ‘돈 되는’ 미용 목적 시장에 집중하느라 약을 꼭 써야 할 환자는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공급은 이런 쏠림을 부채질하고 있다. 만병을 고친다는 명약이지만 진짜 환자들에겐 외려 ‘그림의 떡’이 된 것이다.

고가의 비만약은 영양 불균형 등으로 비만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사치다. 한 지역 병원 의사는 “농촌지역 등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비만 문제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토로했다. 과도하게 살찌는 게 질병인지조차 인식 못 하는 이들에게서 비만이 감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다는 의미다. 의료 현장에서 청소년 환자만이라도 약을 쓰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이유다.

아이들은 게으르거나 결단력이 부족해 살이 찐 게 아니다. 식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심리적 결핍과 뛰어놀기 힘든 환경이 낳은 사회적 질환에 걸린 것이다. ‘어린 비만’부터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아이들 비만은 조기에 개입하지 않으면 성인까지 이어진다. 사회·경제적 부담을 키우는 심각한 만성질환이다. 이들의 생명권을 지키고 신약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은 건강보험의 또 다른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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