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7일 10원 가까이 급등한 것은 미국 고용 악화 우려에 따른 위험 회피와 외국인 투자자의 증시 이탈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1450원을 훌쩍 넘는 원·달러 환율 수준은 이런 일시적 요인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과 개인의 해외 투자 증가에 따른 구조적 요인이 전반적인 환율 수준을 높이면서 고환율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30원 가까이 급등했다. 지난달 말 1428원80전이던 환율이 이날 1456원90전까지 올랐다. 외국인 투자자가 연일 차익을 실현하면서 유가증권시장에서 이탈하자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은 미국 고용이 악화했다는 지표가 나오면서 환율 상승세를 부추겼다.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으로 정부 고용지표가 발표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민간 컨설팅 업체에서 미국 기업이 대규모 감원을 했다는 통계를 발표하면서 위험 회피 심리가 나타났다. 미국 증시에서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위험 회피 흐름을 강화했다.

고용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낮출 것이란 예상이 나오자 달러화지수가 소폭 하락했지만 위험 자산인 원화의 약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환율 수준이 1450원 위로 올라선 것은 최근 몇 달간 외국인 투자자가 대규모로 국내 증시에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환율이 내려가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 투자하면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수요가 늘어나 환율이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난달 환율은 코스피지수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달러당 1400원에서 1430원대로 오히려 오르는 흐름을 보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 규모는 지난 2분기 말 기준 1조304억달러로 집계됐다. 작년 말(1조1020억달러)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2023년 말(8051억달러)보다는 27.9%, 2020년(4872억달러)보다는 2.1배 증가했다. 관련 보고서를 쓴 이희은 한은 과장은 “순대외자산 증가는 자본의 해외 유출에 따른 국내 자본시장 투자 기반 약화, 달러 수요 증가에 따른 원화 약세 압력 등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역시 해외 투자가 늘면서 수출 대금을 환전하지 않고 달러로 보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약세에 대한 기대가 자리 잡은 만큼 수출 업체의 달러 매도 수요도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확정된 것도 외환시장엔 부담 요인이다. 외환당국은 해외에서 운용하는 자산의 배당과 이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국내 외환시장에는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보유액을 충당할 금액을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율 개입 여력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신한투자증권과 DS투자증권 등은 한국의 저성장 등 펀더멘털(기초체력) 요인과 해외 투자 증가 등을 이유로 내년에도 환율이 140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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