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가 최근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공지를 내걸어 논란이 확산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영업의 자유와 평등권 침해 사이의 공방이 이어지고, 외국 언론까지 이를 인용 보도하면서 사안은 단순한 지역 이슈를 넘어섰다. 해당 카페 사장은 중국인 출입 금지 방침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의 핫 플레이스 관광지인 성수동인 만큼 비슷한 사례가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최근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 허용 조치와 맞물리며, 영업의 자유와 인종차별 문제가 충돌하는 상징적 사례로 떠올랐다. 다문화·다민족 사회로 빠르게 나아가는 한국 사회가 포용과 배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나아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치가 부딪힐 때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까지 던진다.
해외에서도 업주의 손을 들어준 비슷한 판례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2001년 특정 오토바이 클럽 회원들의 출입을 제한한 주점 업주에게 정당성을 인정했다. 법원은 “특정 집단을 배척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이나 분쟁으로 다른 손님이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면 제한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업주의 자율적 판단은 권리의 일부라고 본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의 일부 비매너 행동이 실제로 영업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제주도에서는 관광객의 무질서한 행동과 환경 훼손 사례가 보고됐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는 중국인 손님이 금연 구역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며 제지를 무시한 사례가 온라인에 퍼졌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며 일부 상인 사이에서 “중국인 단체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자구책이 퍼진 것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업주 입장에서는 눈앞의 매출보다 가게 분위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는 옹호 여론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을 인종차별이라기보다 ‘업주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 판단’으로 보는 것이다.
현재 반중 정서가 한국 사회에 배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의 81%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2030세대의 경우 90% 이상이 중국에 비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업주가 불가피하게 ‘다수 고객의 정서를 고려한 결정’을 내린 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국가나 사회가 일률적으로 ‘모든 손님을 받아야 한다’고 강제해선 안 된다. 분란을 막고 단골 고객의 편의를 지키기 위한 영세 자영업자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영업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게 맞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이런 차별을 한국인도 얼마든지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똑같은 일을 당해도 업주가 가진 영업의 자유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텐가. 일본 도쿄의 한 식당이 “한국인과 중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공지해 거센 비판을 받은 사건이 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이는 인종차별이고 공개적 혐오 발언”이라며 해당 업소를 비난했다. 일본 변호사 단체는 “국적을 이유로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일갈했다. 한국에서도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런데 이런 한국에서 중국 손님을 배제하는 건 아이러니이자 이중 잣대 아닌가. “특정 국적을 가려 손님을 받는다는 건 단순한 영업 행위가 아니라 사회의 품격을 드러내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정서가 확대되면, 장기적으로 해외 관광객 감소와 국가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성수동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대표 관광지로, 외국인 혐오 논란은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업소 설득에 나섰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가운데 우리 사회의 내재된 배타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이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외국인 인구가 5% 이상이면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국적을 이유로 한 배제는 일상 속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강화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포용성을 약화시킨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사회의 성숙도는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다름을 이유로 선을 긋기보다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민주사회의 품격이자 이번 논란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다.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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