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인공지능(AI) 가속기 업체인 엔비디아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TSMC에 생산라인을 추가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8개 빅테크가 내년에 AI 등에 6020억달러(878조원)를 투자하기로 한 만큼 AI 가속기 수요도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생산 물량도 함께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AI 가속기 수요 강력
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 대만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웨이저자 TSMC 회장에게 AI 가속기 생산라인을 추가로 요청했다. 젠슨 황 CEO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신 AI 가속기 수요가 매우 강력하다”며 추가 생산 라인 요청 사실을 인정했다. 올해 TSMC 매출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1%로 애플(약 25~27%)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외신에 따르면 TSMC는 젠슨 황 CEO의 요청에 내년 하반기 엔비디아가 출시할 예정인 최첨단 AI 가속기 ‘베라 루빈’용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라인 증설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만 남부 과학단지에 있는 TSMC의 3나노 라인 생산 능력(웨이퍼 투입량 기준)은 현재 월 10만 개에서 16만 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TSMC 3나노 공정 증설
젠슨 황 CEO가 TSMC에 증설을 요청한 것은 그만큼 AI 가속기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빅테크도 AI 가속기가 들어가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를 계속 늘리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MS, 구글, 아마존, 메타, 오라클,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등 8개 빅테크의 설비투자 규모는 올해 4306억달러로 지난해(2609억달러) 대비 65% 증가하고, 내년엔 6020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기업은 최근 들어 AI 설비 확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메타는 7일 “미국의 AI산업에 3년간 6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구글도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기존 850억달러에서 최대 930억달러로 올려 잡으며 “클라우드 고객 수요 충족을 위한 데이터센터 건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HBM, AI 병목현상 원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HBM 공급사도 생산량 확대에 나서고 있다. HBM은 최신 AI 가속기에 없어선 안 될 핵심 부품이다. 엔비디아의 주력 AI 가속기인 ‘B200’에는 총 180GB(기가바이트) 용량의 HBM3E(5세대 HBM) 8개가 장착된다.
산업계에서는 AI 인프라 확대에 ‘병목 현상’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로 HBM 공급 부족을 꼽는다. 반도체 장비업체 KLA의 리처드 월러스 CEO는 지난달 29일 “AI 인프라 병목 현상의 원인이 최첨단 패키징에서 메모리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젠슨 황 CEO도 메모리 공급 부족을 염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사업이 성장하는 시기에는 공급 부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다. 지난달 실적설명회에서 HBM 증산 가능성을 공식화한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 공장을 중심으로 HBM4(6세대 HBM) 생산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HBM4 생산 확대를 위해 충북 청주에 세운 신공장 M15X에 장비 반입을 시작했다.
황정수 기자/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