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중국 전기차가 이중고에 빠졌다. 내수에선 공급 과잉과 출혈 경쟁으로 주요 업체들의 수익율이 7년 만에 반토막 났고, 해외에선 유럽연합(EU)이 자국 업체들의 제조원가를 낮춰주기 위해 소형 전기차 규제를 풀기로 해서다. 미국은 지난해 9월부터 100% 관세를 부과해 사실상 중국 완성차의 수입문을 닫은 상태다. 난립하던 중국 전기차 업계의 ‘교통정리’가 빨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10일 자동차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다음달 10일 ‘경제적 소형 전기차’ 규격을 신설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모든 승용차에 일괄 적용되는 안전·기술 기준을 소형 전기차에 한해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유럽 제조사들이 1만5000~2만 유로(약 2500만~3330만원)대 소형 전기차를 보다 경쟁력 있게 생산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간 유럽 업체들은 차체 크기와 무관한 규제 탓에 소형 전기차의 제조원가가 다른 지역 보다 높다고 지적해왔다.
EU는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도 재검토에 나섰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4일 “지금처럼 방관하면 유럽 내 연간 자동차 생산이 1300만대에서 900만대로 줄 것”이라며 “2035년 내연기관차 전면 금지 목표에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의 전기차 규제 완화는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올 상반기 유럽 내 중국 전기차 판매량은 34만7135대로 전년 동기 대비 91% 급증했고, 시장 점유율은 2.7%에서 5.1%로 확대됐다. EU가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 관세과 부과했는데도 덩치를 도리어 키웠다. 미국이 100% 관세로 수입을 사실상 봉쇄하자 중국 업체들이 수출 물량을 유럽에 집중한 영향이다. 업계에선 새 규격이 신설되면 유럽 메이커들이 저가 전기차를 앞세워 맞불을 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업체로선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문턱을 높이는 사이 중국 내부는 공급 과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완성차 내수 판매는 2690만대로 전체 생산 능력(5507만대)의 절반 수준이다. 수출 물량(약 586만대)을 고려하더라도 공장의 40.5%(2231만대)는 놀고 있다는 의미다.
가격 출혈 경쟁도 거세다. 비야디(BYD), 샤오펑 등 중국 전기차 업체 6곳의 평균 차량 판매가격은 2021년 3만1000달러(약 4500만원)에서 지난해 2만4000달러(약 3485만원)로 떨어졌다. 이들 업체의 평균 수익률도 2017년 8%에서 2024년 4.3%로 반토막 났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 130곳 가운데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업체는 BYD, 테슬라차이나, 리오토, 지리 등 4곳에 그쳤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구조조정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는 2030년까지 130개 업체 중 약 15곳만 생존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정부도 내년부터 전기차를 전략 산업 목록에서 제외하고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하며 교통정리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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