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전반적·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것과 같다.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돈의 양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을 늘리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현대 화폐 경제에서 돈이 늘어나는 메커니즘은 이렇다. 김씨가 A은행에서 100만원을 빌린 뒤 이 돈을 같은 은행의 예금 계좌에 넣어 뒀다고 하자. 은행의 지급준비율은 10%로 가정한다. A은행은 김씨의 예금 100만원 중 10만원을 제외한 90만원을 이씨에게 대출해준다. 이씨는 이 90만원을 B은행에 예치한다. B은행은 90만원 중 9만원을 제외한 81만원을 박씨에게 빌려준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최초의 100만원은 1000만원까지 불어난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돈은 새로 생겼지만, 이자는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출 금리가 연 5%라면 김씨, 이씨, 박씨 등이 갚아야 할 돈은 원금과 이자를 합쳐 1050만원이다. 그런데 이 경제의 통화량은 1000만원뿐이다. 이자를 갚을 돈이 없다.
이런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또 다른 누군가가 빚을 내 새로운 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결국 돈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고,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런 세상에서 주식, 부동산 등 자산에 투자하지 않고 현금만 들고 있다가는 벼락 거지가 되기 십상이다.
이를 일반화한 것이 화폐수량방정식 MV=PY다. M은 통화량, V는 화폐유통속도, P는 가격, Y는 산출량이다. 이 가운데 산출량 Y와 화폐유통속도 V는 단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화량 M이 증가하면 물가 P가 오른다.
화폐수량방정식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통화 공급이 적절하게 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경제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통화량 증가는 불가피하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돈을 찍어내면 그 돈은 정부와 직접 거래하는 일부 기업과 금융회사에 먼저 간다. 이들은 아직 물가 상승이 본격화하기 전에 가치가 높은 돈을 사용한다. 또 그 돈으로 주식, 부동산 등을 매입한다. 시간이 지나면 일반 서민에게도 돈이 흘러간다. 하지만 이때는 돈이 풀린 영향으로 물가가 오른 뒤다.
이렇게 정부가 돈을 풀었을 때 자산 가격이 상승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구매력이 하락해 더 가난해지는 현상을 ‘캉티용 효과’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는 정책은 종종 가난한 사람을 더욱 궁지로 내몬다. 300년 전에도 그랬다.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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