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시절부터 보고서를 쓰며 고민을 이어갔고, 퇴임 후 최근에야 다시 꺼내 손봤다. 30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정부 고위 인사에게도 전달됐다. 윤 전 회장은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주거 불안”이라며 “복합·구조적인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해선 세제도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부동산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퇴임하고 보니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이 더 들더군요. 청년들이 집이 없어 결혼을 미루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다음 세대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회계사이기도 하고 금융권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시장을 관찰했는데, 부동산 시장 왜곡은 세금 구조의 문제도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부동산 세제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지금 부동산 세제는 ‘몇 채를 가지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얼마짜리 주택을 가지고 있느냐’죠. 서울 외곽이나 지방에 주택을 두세 채 가진 사람보다 훨씬 비싼 강남 아파트를 한 채 보유한 사람이 세금 혜택을 더 받는 게 현실입니다.”
▷고가 주택자를 겨냥해야 한다는 건가요.
“세제를 정상화하자는 겁니다. 시장 원리를 존중하면서 공평하게 조세를 부담하도록요. 보유세만 보더라도 올릴 거냐, 내릴 거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어요. 하지만 보유세나 양도소득세 자체 형평성에 문제가 있거든요. 지금처럼 중저가 다주택자에게 과세를 집중하고, 고가 1주택자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구조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정상화해야 합니까.
“세제를 보유 수가 아니라 ‘가액 기준(종가 과세)’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어도 합산 가격이 낮다면 세 부담이 과도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한 채만 가지고 있어도 고가 주택이면 응능부담(應能負擔)의 원칙에 합당한 세금을 내야 합니다. 지금은 ‘다주택자=투기 세력’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이 세제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다주택자에게 혜택을 주자는 말인가요.
“이제 임대차 계약이 모두 신고되고 있고,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기반도 마련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다주택자를 모두 투기 세력으로 보고 세금을 과하게 매기고 있어요. 결국 임대 공급이 위축되고 세입자만 더 힘들어집니다. 다주택자 중과는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다주택 중과 대신 모든 임대소득 실현분에 공정하게 세금을 물리고, 간주임대료 혜택 축소 같은 현실적 조정이 필요합니다.”
▷양도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1가구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제도를 소득공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은 양도가액 12억원 이하만 비과세되지만, 주택 가격이 오른 사람에게 과도한 혜택이 돌아가죠. 양도 차익 규모를 기준으로 일정 한도까지만 공제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형평성이 훨씬 개선됩니다.”
▷부동산 보유세를 둘러싼 논란이 거센데요.
“한국은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0%가 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시가총액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입니다. 어느 정도의 공시 가격 현실화는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보유세 부담도 줄여야 하나요.
“보유세·양도세 이연 또는 연부연납제도를 확대해야 합니다. 고령층은 현금 소득이 없는데도 보유세 등을 내야 하죠. 소득의 일정 비율을 초과하는 세금은 이연하고, 사망이나 주택 처분 시 정산하도록 하는 식이죠. 이건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 중인 방식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부동산 세제 개편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세금은 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입니다. 세금이 투기를 억누르는 ‘벌’이 아니라 공평하게 시장 왜곡을 바로잡는 지속할 수 있는 장치가 돼야 해요. 지금은 ‘이 정부만 버티면 바뀐다’고 생각하잖아요. 부동산은 정권이 바뀌어도 큰 틀을 흔들지 않는 합의가 필요합니다. 여야가 세제 원칙에 합의하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현재 대출 규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여전히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중심인 게 문제입니다. 소득을 기준으로 상환 능력을 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은 DSR 적용 예외가 너무 많아요. 올해 상반기 신규 대출의 60% 이상이 DSR 규제에서 빠져 있습니다. 연령대별로 대출 만기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세대출도 문제입니다.
“현행 전세대출 제도는 시장의 유동성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DSR을 적용해 돈을 빌린 사람이 원리금 상환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전세자금대출보증도 청년·취약계층으로 제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해야 시장의 과잉 유동성을 점진적으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상환을 유도할 수 있나요.
“전세대출 원리금을 성실히 상환하는 사람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겁니다. 전세대출을 제한하면 실수요자가 피해를 봅니다. 반면 상환 인센티브를 주면 자연스럽게 가계의 유동성이 회수되고, 금융권의 건전성도 강화됩니다.”
▷강남에 수요가 집중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단순한 대출·세금 규제로는 근본 해결이 어렵습니다. 재건축 등의 신속한 지원을 통해 강남 공급의 숨통을 틔워줘야 합니다. 강남권에 ‘전세 캠프’를 만들어 순환 이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여기에 강남을 대체할 ‘수요특화지역(가칭)’도 서울 안에 조성하는 겁니다. 수요를 분산하는 것이죠. 다만 초기에는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30쪽 비공개 부동산 보고서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현 고문)이 만든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책 제언’ 보고서(사진)는 한국 주택시장의 구조적 불균형을 세대·소득·정책의 관점에서 진단했다. 윤 전 회장이 최고경영자(CEO) 재임 시절부터 구상해 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KB경영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퇴임 후 직접 수정·보완했다. 30여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예측 가능한 시장형 주거정책을 제도화하자는 게 핵심이다.보고서는 주택 문제를 단순한 경기 이슈가 아닌 거시경제의 구조적 리스크로 규정한다. 자산 양극화와 세대 간 격차, 임차시장 불안이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수요자 중심의 금융체계 개편, 조세 구조 정상화, 임차시장 신뢰 회복, 정책 일관성 확보 등 네 가지 축을 제시한다.
세제 개편 방향으로는 가액(價額) 기준 체계 전환을 제시했다. 대출 규제는 복잡한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체계에서 벗어나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중심으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세대출은 청년·취약계층 중심으로 제한하고, 전세보증보험 가입 주체를 임대인으로 전환해 전세사기와 과잉 유동성을 동시에 막자는 제안도 담겼다.
보고서는 “부동산은 정권 교체 때마다 뒤바뀌면 안 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로 관리해야 할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조미현/김진성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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