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가성비'를 앞세운 자체 브랜드(PB) 상품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고물가 현상이 심화하면서다. 미 월스트리트 등의 PB 기업 투자도 늘고 있다.
반면 전통적인 소비재 브랜드들이 속한 CPG(일상 소비재) 섹터에 대한 월가의 평가가 냉랭하다. 필수소비재 섹터를 대표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XLP(Consumer Staples Select Sector SPDR Fund)는 올해 연초 대비 수익률이 -3.8%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S&P500이 14.3%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XLP는 주요 섹터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부진한 분야로 꼽힌다.
최근 거시 경제 지표상 인플레이션 위기는 정점을 지났다는 평가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기준 지난 9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0%로 안정화됐다. 그러나 소비자가 체감하는 주관적 '가격 피로감'은 '끈적하게(sticky)' 남았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매켄지는 올해 보고서에서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시기에 형성된 소비 습관이 고착화되었다"고 분석했다. 매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 소비자 4명 중 3명이 가격이 더 저렴한 제품으로 바꾸는 '트레이드다운(다운그레이드 구매)'을 경험했다 답했다.
이런 소비자 행동 변화에 힘입어 PB는 '황금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세계PB제조사협회(PLM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소매 매출 증가분의 47%를 PB가 차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PB 시장은 커졌다. 올해 글로벌 PB 가치 점유율은 24.9%에 달하며, 유럽 시장은 37.6%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페기 데이비스 PLMA의 회장은 "쇼핑객들은 PB가 제공하는 품질, 가치, 혁신의 조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유통사는 PB 포트폴리오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CPG의 시장 지배력을 잠식하고 있다. 월마트는 지난 4월 약 300개 품목으로 구성된 신규 PB ‘Bettergoods’를 출시했다. 이는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PB 식품 출시였다. 대부분의 제품 가격이 5달러 이하로 책정됐다. 아마존도 지난달 1일 ‘Amazon Grocery’를 출시하며 저가 PB 전략을 강화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CPG 기업의 핵심 경쟁력인 ‘가격 결정권’을 약화했다. 과거에는 브랜드 신뢰를 기반으로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신뢰할 만한 PB로 이동하면서 가격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PB의 존재 자체가 CPG의 가격 전가 능력을 제약하는 셈이다.
유통사들은 가격 인하 공세까지 더하고 있다. 작년에만 8000개 이상의 품목 가격을 상시 인하했고, 알디는 미국 내 400개 이상 제품의 추가 인하를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할인 경쟁이 아니다. 유통사가 시장의 가격 결정 주도권을 쥐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 CEO는 지난 5월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공급업체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P&G는 2026 회계연도 1분기(2025년 7~9월)에서 유기적 매출이 2% 성장했다. 저성장이지만 방어하는 체력은 확인했다는 평가다. 유니레버는 지난 3분기 기초매출 성장(USG) 3.9%를 달성했다. 네슬레 역시 2025년 1~9월 누계 실질내재성장이 0.6%를 기록했다.
존 멀러 P&G의 최고경영자(CEO)는 "단기 변동성(PB 공세)에 맞서 브랜드, 혁신, 수요 창출에 대한 장기 투자를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P&G가 10개 카테고리 중 7개에서 글로벌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확대한 것은 뷰티 및 헬스케어 등 프리미엄 혁신이 PB의 저가 공세를 상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니레버가 낮은 마진의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분리하고 높은 마진의 '파워 브랜드'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베인앤컴퍼니는 "많은 대형 CPG가 '과거 시대에 구축된 공급망'과 '사라지는 카테고리'라는 구조적 방해물에 발목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혁신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CPG 기업들의 수익성이 낮아지면 연구개발(R&D) 투자가 줄기 마련이다. 이는 장기적인 제품 혁신과 품질 향상을 저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PB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들은 유통사의 강력한 협상력에 낮은 납품 단가를 강요받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구조는 산업 생태계의 균형과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 시장은 글로벌 트렌드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닐슨아이큐(NIQ) 코리아는 "한국 소비자의 77%가 PB를 일반 브랜드의 대체재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관련 시장 특징 중 하나는 '쿠팡'이다. 쿠팡은 지난 3분기 매출 12조 8455억 원(+20%), 영업이익 2,245억 원(+49%)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쿠팡과 기존 유통사의 PB 활용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마트에 '노브랜드'가 수익을 내는 핵심 '상품'이다. 반면 쿠팡에 PB(곰곰 등)는 NB 제조사를 통제하는 강력한 '협상 카드'이자 '수단'이라는 평가다. 쿠팡의 높은 마진은 PB 판매가 아닌, '로켓배송'의 물류 효율화와 판매 플랫폼 수익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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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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