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만관제)이 혁신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24시간 혈압 측정이 가능한 반지형 혈압계 등 연속·비침습 혈압 모니터링 기기가 지난해 의료기기 인증과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받았지만, 여전히 고혈압 평가지표에서 제외돼 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남희·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대한고혈압학회와 개최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 질 향상 토론회’에서는 고혈압 평가지표 개선이 만관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핵심과제로 꼽혔다.
만성질환 중에서도 특히 고혈압은 사망과 질병 부담의 주요 원인으로, 추가 재정 투입 없이 평가지표 개편만으로 관리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해영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사망에 대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의 기여위험도를 비교하며 “고혈압은 18~54세의 가장 넓은 연령층에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며 “중년기(평균 55세)에 고혈압이 있거나 노년기(평균 71세)까지 지속될 경우 치매 발병 위험이 두 배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고혈압 관리는 환자 거부감이 적고 기존 인프라로도 시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의 현실성이 높다는 평가다. 당뇨나 이상지질혈증이 채혈을 동반한 침습적 검사를 필요로 하지만, 고혈압은 채혈이 불필요한 비침습적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24시간 연속혈압측정기(ABPM)인 손목형·반지형 혈압계가 상당수 의원급 의료기관에 보급돼 있어 현행 의료 체계 안에서도 무리 없이 도입할 수 있다는 점도 고혈압 관리의 장점으로 꼽혔다.
스카이랩스의 세계 최초 반지형 혈압계 ‘카트비피’는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 인증을 받고 6월 보험급여가 결정됐다. 임상 연구에서 정확도가 기존 자동혈압계와 거의 동등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고혈압 관련 평가지표에 24시간 혈압 측정 항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고혈압 평가지표는 혈액·소변·심전도 검사만 포함한다. 2023년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고혈압 질환 평가 대상 환자 중 24시간 혈압검사 시행률은 1.71%로, 혈액 검사(73.3%), 소변 검사(47.0%)보다 극히 낮은 수치다.
이 교수는 “야간 혈압은 깨어 있을 때보다 심뇌혈관 질환 사망을 더 정확히 예측한다”며 “수면 중 혈압이 높을수록 아침 혈압이 급상승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뇌졸중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고혈압 관리의 평가지표를 환자 등록률 중심에서 혈압 조절률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 1회 24시간 혈압검사를 통해 평균 혈압을 측정하도록 지표를 개편하면, 심평원이 이를 기반으로 고혈압 조절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심평원은 24시간 혈압 측정 항목의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행 수가 체계상 이를 모든 고혈압 환자에게 일상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론 패널로 참석한 오주연 심평원 지불제도개발부장은 “현재 급여 기준상 24시간 혈압 측정은 진단이 불명확하거나 약물 조절이 필요한 경우 등 특정 상황에만 인정된다”며 “다만 예방적 관점에서 선제 대응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 측정 효용과 효과성이 입증된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적용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평원은 내부적으로 급여 확대에 관한 행정적·기술적 검토를 이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은정 복지부 건강정책과장은 “야간 혈압 측정의 정확성과 환자 편의성, 임상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례 축적과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며 “효과성과 안전성이 입증되면 정책 반영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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