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082.33
(53.82
1.34%)
코스닥
922.41
(7.42
0.8%)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오토니엘의 '우아한 유혹'을 따라...덕수궁 연못에서 아비뇽 교황청으로

입력 2025-11-28 17:24   수정 2025-12-01 14:59

2022년 여름, 덕수궁 연못에 황금빛 연꽃이 피어올랐다. 금빛 구슬이 연잎 사이로 반짝이고, 노송 가지엔 금빛 목걸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유리구슬의 마법사' 장-미셸 오토니엘이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정원을 무대로 펼친 <정원과 정원> 전시였다.

그로부터 3년, 오토니엘의 작품이 올해 여름 프랑스 아비뇽 전역에 펼쳐졌다. 교황청에 푸른 강이 다시 흐르고, 아비뇽 다리엔 붉은 십자가가 섰다. 역대 최대 규모인 260점의 작품이 교황청, 쁘띠 팔레, 생클레르 예배당 등 도시 곳곳 10개 장소에 설치됐다.



아비뇽 전시를 다녀온 후, 파리 근교에 있는 오토니엘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장소의 역사를 읽고, 빛으로 답하는 작가를 만났다.

"한국에서 제 작업을 좋아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오토니엘은 한국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입을 열었다. 영감은 어떻게 받느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부터 화이트 큐브, 즉 갤러리나 미술관의 하얀 공간이 아닌 장소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저는 어떤 나라에 가든 가장 먼저 정원을 찾습니다. 정원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보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정말 행복했어요. 베르사유 전시 후 한국에 왔을 때 덕수궁은 꿈같은 장소였죠. 저는 늘 제 작업과 작품을 보여주는 장소에서 과거와의 연결을 생각합니다. 궁에서 허가를 받은 후 한국 정원에 대해 연구했어요. 무척 새로웠습니다."



땅이 기억하는 소리

한국 정원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자연 자체였다. 오토니엘은 도시 안에 거대한 자연이 펼쳐진 듯한 환상이 오로지 왕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과 정원이 걷는 사람의 몸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 한국 정원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예를 들어 제가 배운 건, 한국 정원에서는 소리가 아주 중요하다는 거예요. 바닥에서 나는 소리의 퀄리티요. 여러 다른 종류의 재료를 사용해서 소리가 나게 해요. 미학적인 동시에 안전을 위해서죠. 정원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소리로 알 수 있으니까요. 산의 전망을 정원의 일부로 포함하는 부분도 흥미로웠어요. 새로운 분야와 역사를 계속 발견하는 걸 좋아합니다."

▷ 과거를 깊이 파고드는 게 작가님의 강점이죠.

"맞아요. 과거와 미래의 접점에서 여러 문화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미래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인 셈이죠. ‘전달’이라는 측면이 중요해요. 예술가로서 과거에 우리가 가졌던 감정을 미래로 전달하는 거요. 그래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제 작업을 만날 수 있어요.”

오토니엘이 한국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5년 전쯤이다. 오토니엘은 자신이 한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유가 한국에는 성스러움에 대한 관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어떻게 이런 걸 다 아시는 거죠?

"도착하면 어디에나 교회가 보이니까요! 어디에나 네온사인의 십자가가 있어요. 밤이 되면 못 볼 수가 없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과 프랑스가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기독교적인 배경을 공유하는 동시에 아시아의 관점을 가진 나라. 오토니엘은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디테일, 재료, 센슈얼리티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가 한국에서 마법 같은 연금술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고.



우아한 유혹

관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서 전통적 맥락의 관능은 직접적이지 않고 미묘하게, 은근히 표현된다고 말했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 의상을 생각해보면, 색깔이 아주 관능적이에요. 형태, 질감… 다양한 디테일로 구현되죠. 장신구도 그래요. 한국에서 아름다움은 중요한 개념이죠."

▷ 언제 아름다움을 느끼세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할 순 없어요. 예술에서 아름다움이란 아주 복잡한 개념이니까요. 어떤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전혀 아름답지 않을 수 있죠. 현대미술에서 아름다움이 언제나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저는 한국의 색채가 주는 아름다움에 끌려요. 보랏빛, 초록… 한복이나 사찰의 전경을 보고 있자면 역사적인 측면에서 공통분모를 느끼게 돼요.

아름다움은 영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해요. 영적 세계로 가는 길에 자리하죠. 빛의 변화를 통해 일상에서 시시각각 마주하게 되는 오브제에서 느끼는 매혹. 제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이 ‘관조’의 경험입니다."

▷ 우아한 유혹으로 느껴지네요.

"저에게 우아함은 아주 아시아적인 개념이에요. 진실된 속성이 담겨있죠. 패션이나 외양이 아니라 보편적이라는 측면에서 전체와 연결되어 있어요. 자연, 하늘, 우주와의 연결. 피상적인 개념이 아니죠. 일본과 한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속성이기도 하고요.

우아함은 연약함과도 연결됩니다. 제 유리 작업은 실제로 쉽게 부서지는 재질은 아니지만 깨지기 쉬워 보여요. 그런 물성은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부서질까 봐 염려되니 잘 간수해야겠다고 생각하죠. 아주 섬세한 감정이에요. 세상을 향한 내밀한 접근이기도 하고요. 우아함과 연약함 둘 다요. 예술 세계도 그래요. 잘 지켜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줘야 합니다. 제 작업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우아함, 영성이 합쳐져 현실 세계를 잠시 떠나 다른 차원으로 피할 곳을 마련하는 거예요."

▷ 언제 우아함이 중요하다는 걸 발견하셨나요?

"1992년 일본 첫 여행 때였어요. 제 첫 아시아 여행이었죠. 정확하게 기억나요. 우아함을 대하는 일본의 정서에 깊은 경의를 느꼈습니다.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일본의 정원은 이런 우아함이 구현된 공간이죠. 겨울과 초봄, 화려하지 않은 계절에도 느낄 수 있어요. 우아함의 디테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국의 정원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정말 놀라웠습니다.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미세한 순간에서 느끼는 디테일이 우리를 차원이 다른 경지로 이끌어 주니까요."



신성함과 종교 없는 영성

▷ 교황청에 설치된 작가님의 작품들은 성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작가님께서는 종교적이거나 기독교에 관한 작업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여전히 신성함과 영성을 다루시죠.

"사실 신성함이 반드시 종교와 연결되지는 않아요. 제게 성스러움은 자연, 우주와의 연결이지만 미시적인 세계, 즉 아주 섬세한 디테일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무언가,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겠죠.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신앙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교황청의 웅장한 건축은 사람들이 공간과 연결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극장에서처럼 스스로의 감정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어요. 처음 대예배당을 봤을 때 공간에 천사들이 떠다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 오브제를 매달고 싶었죠. 이렇게 큰 공간과 맞서 싸울 순 없어요. 오히려 공간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사람들이 마치 춤을 추듯 그 속으로 이끌리게 만드는 거죠.”

자연과 함께 자란 꿈

▷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에너지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어떤 어린 시절이었나요?

"운이 좋았어요. 너무 크지 않은 도시에서 자연 가까이 살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죠. 조용하고 시적인, 늘 꿈꾸는 아이였어요. 부모님과 함께 집 근처 산까지 걸어가곤 했어요. 도시를 탈출하는 방법이기도 했죠. 자연과 함께 자랐어요."

▷ 도스토옙스키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말과도 연결되나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고, 세상을 살아갈 희망을 주니까요. 단순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꽃의 은밀한 언어’라는 책을 쓴 겁니다. 책에 나오는 꽃들 대부분은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꽃들이에요. 작업할 때도 유리나 금 같은 재료를 써요. 자연에서 온 소재죠.”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