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 양보해서 더 내라고 하는 거? 인정한다. 그러면 윗세대는 덜 받을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4050세대가 표가 가장 많으니까 표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영포티'란 단어로 불거진 세대간 갈등이 가장 극적으로 폭발하는 지점은 바로 국민연금 분야다. 특히 내년 1월로 시행 예정된 개정 국민연금법은 물밑에 잠재해 있던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 법이 시행되면 2030세대가 영포티에 비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 통계로 입증되면서다.
연금 수령 측면에서 2030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4050세대 역시 자녀 양육과 부모님 노후를 동시에 챙겨야하는 세대로 등골이 휘고 있다는 곡소리가 나온다. 결혼관과 부모 부양관이 다른 2030세대에 비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호소다. 미래가 불안한 이들은 주식시장과 개인 연금으로 몰려가고 있다.
◇ '세대 분열' 도마 위에 오른 국민연금
지난 3월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주재 회동에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 및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군 복무·출산 크레디트 확대 등 모수 개혁을 담은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하고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합의안의 핵심은 '더 내고 더 받는' 것이다.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높이기로 했다. 해마다 0.5%포인트씩 8년간 오른다. '받는 돈'을 정하는 소득대체율(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은 내년부터 43%로 올린다. 소득대체율은 올해 기준 41.5%다.
당시 여야를 막론하고 젊은 정치인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실제 표결에서 84표의 반대·기권표(반대 40명, 기권 44명)가 나왔다. 젊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7개의 반대·이탈표가 확인됐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지금의 국민연금이 가진 위기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도 "'폰지 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폭탄 넘기기는 이제 그만하고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앞세대에서 최소한의 폭탄 해체작업을 해두지 않으면 뒷세대는 말 그대로 폭발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우려 제기를 '세대 갈라치기'로 규정하며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300여개 시민 및 노동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최근 연금개혁, 정말로 청년들에게 불리할까' 보고서를 통해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개편안이 청년세대에 불리하다는 주장은 세대 갈등을 유발하고 공적연금의 본질을 왜곡해 복지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 통계가 보여준 '불안'의 실체
2030세대의 손해가 자명하다는 건 이견이 거의 없다. 심지어 '세대 갈라치기'라고 한 연금행동도 "청년들이 올라간 보험료를 더 오래 납부해야 하므로 보험료 부담 면에서는 미래세대가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이러한 배경에는 '보험료 13% 기간'이 있다. 20~30대는 18년, 50세는 3년 13%의 보험료를 낸다. 20~30대가 소득대체율 43%에 해당하는 기간이 길어 연금이 오르긴 하지만, 보험료 부담 증가를 능가할 수 없다.


실제 개정 전보다 2030세대의 수익이 악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재정학회의 '세대 간 회계를 활용한 연금제도의 세대별 혜택 및 부담 변화 분석' 논문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 체계(보험료율 9%·명목 소득대체율 40%)에서 2000년대생의 수익비는 2.18로 분석됐다. 1990년대생은 2.17, 1980년대생은 2.16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이미 연금을 받고 있거나 받을 예정인 1960~1970년대생은 각각 1.73, 1.98로 낮았다.

하지만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국민연금법을 적용하면 2000년대생의 수익비는 1.65로 급락한다. 0.53포인트 하락해 다른 세대보다 감소 폭이 가장 크다. 반면 1970년대생은 1.98에서 1.92로 0.06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친다.
현행 제도와 개정안을 비교해보면, 2000년대생은 -22.0%, 1990년대생은 -14.6%, 1980년대생은 -7.1%, 1960년대생은 0.4% 순으로 연령대가 낮을수록 1인당 혜택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래 현행 제도로 하면 1인당 순혜택은 2000년대생이 1.23으로 가장 높았다.
이를 접한 2030세대 누리꾼들은 "당신들이 뭔데 우리 노후자금으로 돈 잔치하냐", "청년 세대를 거지로 만들 참이냐", "외국으로 다 떠나는 게 이해가 간다.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냐", "586 내로남불 때문에 젊은 세대가 피를 보는 구조가 됐다" 등 분노를 쏟아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30세대 사이에서는 연금을 폐지하는 게 낫다는 반응도 적지 않게 나온다. 연금개혁청년행동이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8~29세 응답자의 29.4%, 30대의 29.0%가 "국민연금을 폐지하는 것이 개혁방안"이라고 답했다. 이 단체가 "현재 국민연금 구조가 자녀 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우는 '다단계 사기' 혹은 '폰지 사기' 같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만 18세~20대 중 63.2%, 30대는 59.2%가 동의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 "받을 수 있는 있을까" 공포
이른바 개혁안에 따르면 재정수지 적자 전환 시점과 기금 소진 시점은 각각 2048년(+7년), 2065년(+8년)으로 연장된다. 2095년 기준 누적적자액이 1763조원 감소하는 것으로도 나타나 일정 수준의 재정안정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하지만 청년들에게 '개혁'이 아니라 '개악'에 가까운 이유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25살 청년이 연금을 받게 되는 첫해가 2065년이다.
2030세대의 희망회로는 국민연금이 주식운용에서 '대박'이 나는 것이다. 김남희 민주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이 연 6.5% 유지하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90년까지로 기존보다 33년 늦춰진다.
국민연금이 전부 고갈되고 부과 방식으로 전환된 첫해인 2065년, 근로자들이 연금을 유지하기 위해 내야 할 보험료율은 34.8%에 달한다는 보건복지부 추산도 있다.
연금개혁의 역사를 보면 불안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번 개정안은 2007년 이후 18년 만이자,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세 번째 연금 개혁이다. 다음 연금 개혁은 언제가 될 지 모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향후 정책 과제로 △ 국고투입을 통해 국민연금재정의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미래세대에 부담을 낮출 필요 △ 자동조정장치를 통해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세대 간 형평성 제고 등을 제안했다. 특히 연금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영포티도 "우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영포티로 대변되는 4050세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2030세대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최근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4050세대의 고용 기반도 흔들리는 데다 자녀 양육과 부모 노후까지 '이중 부담'으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보험개발원에 따르면 4050세대가 예상하는 은퇴 후 자녀 1인당 교육비는 평균 7749만원, 결혼에 드는 비용은 1억444만원에 달한다. 은퇴 시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급여(평균 1억699만원)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40대 가장인 직장인 최모씨는 "연금개혁만 놓고 보면 2030세대의 분노가 이해가 간다"면서도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저기 낀 우리 세대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노후가 가장 뒷순위"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말에는 90%가 부모 부양을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수치는 2014년 32%, 2022년에는 10%대로 떨어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중년의 이중 과업 부담과 사회불안 인식: 가족 돌봄과 노후 준비를 중심으로' 보고서에는 45~64세 중년 중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비율이 12.5%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의 어려움이 대체로 샌드위치 세대인 40~50대에 집중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돌봄 어려움이 있는데 노후 준비를 하지 않아 '이중 과업' 부담이 있는 집단의 비율은 △ 남성 △ X세대 △ 어렸을 때부터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던 20세 이전 소득계층 하층 △ 실업 상태 △ 현 시점 소득 하위 계층인 경우에서 높았다.
돌봄 부담이 있고 노후 준비도 안 했다는 응답은 X세대(1975~1977년생)가 18.1%로 가장 높았고 이어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 12.5%, 1차 베이비붐 세대(1958~1963년생) 9.6% 순이었다.
자신을 가장 마지막으로 챙기기로 한 세대의 모습은 '노인빈곤율 1위'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의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이행현황 2025'를 살펴보면, 한국의 은퇴 연령 인구인 66세 이상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에다 OECD 평균의 3배 수준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노인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바 있다. 유엔(UN)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 '국가'에 대한 불신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20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국민연금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5.7%로 나타났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44.3%였다.
특히 연령별로 보면 2030세대와 4050세대의 신뢰 온도가 확연히 달랐다. 20대는 30.8%, 30대는 25.3%만 신뢰한다고 했다. 반면 40대는 42.6%, 50대 55.8%, 50대 이상 62.9%로 신뢰도가 2030세대와 비교해 현저히 높았다.
국민연금법 개정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 모수 개혁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3.4%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19.7%였다. 부정적 응답을 연령대별로 보면 20대는 83%, 30대는 82.8%, 40대는 74.5%, 50대는 74.3%지만 60대 이상에서는 52.2%로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에 대한 2030세대의 우려는 '국가 주도형' 퇴직연금에도 퍼지고 있다. 피앰아이가 지난 9월 전국 직장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3.4%가 퇴직연금 의무화에 찬성한다고 밝혔으며 반대는 16.1%, 유보는 10.5%였다.
하지만 연령별로 보면 25~29세에서 의무화 반대 비율이 25.0%로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30대의 반대도 18.1%로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 젊은 층이 국가 주도형 연금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강제'라는 요소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40대는 반대 12.1%, 50대는 14.7%로 젊은 세대보다 수용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 연금 제도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실제 하위권이다. 자산운용업체 머서와 글로벌 투자전문가협회(CFA)가 발표한 2023 글로벌 연금지수(MCGPA)에 따르면 한국의 연금제도는 100점 만점 중 51.2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국 47개국 중 42위였다.
◇ 암담함에 투자 광풍·개인 연금으로
이런 사이 미래가 불안한 이들은 주식 시장과 개인 연금으로 몰려가고 있다. "내 살 길을 내가 찾아야 한다"는 심리에서다. 하나금융연구소의 2026 금융소비자 트렌드에 따르면 금융자산이 1억원 이상인 고객 중 MZ세대 비중은 2022년 19.8%에서 올해 33.6%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밀레니얼 세대(1980~90년대 초반 출생)의 금융자산 중 투자자산 비율이 올해 기준 평균 34.9%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1년 사이 4.1%포인트 늘었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생)의 투자자산 예치 비중은 같은 기간 1.4%포인트 상승한 26.3%였다. 반면 이들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1950~60년대생)의 투자자산 비중은 1년 새 3.9%포인트 줄어든 28%였다.
최근 상승세인 주식 장에서 연령대를 불문하고 남성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드러나는 통계도 확인된다. 여전히 결혼 시장에서 부동산 마련 등 심리적 부담이 큰 젊은 세대부터 죽을 때까지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중장년층 가장까지 투자 광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NH투자증권이 고객의 주식 회전율(매수·매도 빈도 지표)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니 60대 이상 남성이 211.5%로 가장 높았고, 이후 2~5위(50대 남성 198.4%, 40대 남성 179.8%, 30대 남성 164.6%, 20대 남 162.4%)도 모두 남성들이 차지했다.
개인 연금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검색량 지표인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개인 연금' 지표는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저점이 올라가고 있다.

공무원인 30대 이모씨는 "공무원 연금을 하도 건드려놔서 은퇴하면 일반 직장인들이 받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외 주식장부터 확인하며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개인 연금도 들어서 은퇴하면 겨우 300만원을 맞춰 받을 수 있게 노후를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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