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익 없이 빚만 늘고 있는 고위험기업의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10조원 안팎 증가할 기회를 놓쳤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고위험기업의 수명연장을 위한 금융지원보다는 신산업 투자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한은의 제언이다.
12일 한은은 조사국 이종웅 차장·부유신 과장·백창인 조사역이 쓴 '경제위기 이후 우리 성장은 왜 구조적으로 낮아졌는가?: 기업 투자경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BOK 이슈노트를 통해 이같은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들은 경제 위기 이후 성장추세가 구조적으로 둔화된 이유를 민간투자 부진에서 찾았다. 위기가 있을 때 한계기업이 퇴출되고, 정상 기업이 다시 등장하는 '정화효과'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으면서 투자 둔화 등 기업 역동성의 회복이 미뤄졌다는 것이다.
2200여개 외부감사대상 기업의 미시데이터를 활용해 이같은 현상을 분석한 결과, 이런 현상은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에서 발생했다. 투자 둔화의 이유는 유동성 부족 등 금융제약보다는 주로 수익성 저하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 정책으로 금융지원을 한 결과로 금융제약 문제는 별로 없었지만 수익성이 낮아져 투자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데이터다.
미국의 경우 경제 위기가 오면 많은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그 자리를 다른 신생 창업기업들이 채우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반면 한국은 퇴출 고위험기업이더라도 실제 퇴출되는 비중이 높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9년 중 퇴출 고위험기업 비중은 전체의 4% 정도였는데, 실제 퇴출 기업은 절반인 2%에 그쳤다. 코로나19 위기 이후인 2022~2024년을 기준으로는 3.8%의 퇴출 고위험기업 중 10분의 1인 0.4%만이 퇴출됐다.
한은은 퇴출 고위험기업이 자연스럽게 퇴출되고 산업내 정상 기업이 새로 생겼다면 민간 투자가 약 2.8~3.3% 증가해 GDP가 0.4~0.5%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2024년 명목 GDP가 2556조8574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 10조2274억원 가량 손해를 본 셈이다.
부 과장은 "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 둔화는 기업 수익성 악화에 따른 투자 부진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정화 메커니즘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아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며 "금융지원을 하더라도 기업의 원활한 시장 진입·퇴출을 통해 경제의 혁신성과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규제완화로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새로운 제품·서비스 수요를 창출하여 우리 경제의 미래 동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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