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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세 스트라디바리우스 '베수비오' 한국 오다

입력 2025-11-28 17:17   수정 2025-11-28 17:50



바이올린은 만년 주인공이다. 클래식 음악의 화려한 매력을 담당하는 스타플레이어인 만큼 악기를 향한 관심도 뜨겁다. 그중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바이올린계의 명품. 전 세계 600여 대에 불과해 때론 200억원대를 훌쩍 넘는 초고가 악기로 화제를 모은다. 악기를 넘어 예술 작품이자 문화 자산이다. 황금빛 실크처럼 부드럽고 다채로운 음색, 마치 인간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내면의 감성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신비로운 악기. 300년 넘게 명기名器로 불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서울 덕수궁으로 여행을 왔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출신의 현악기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남긴 악기를 가리킨다. 100년도 채 안 되는 인간의 삶보다 몇 배는 더 살아온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는 마법과 같다. 연주자의 실력과 청중의 기대, 악기의 오라가 그 재료다. 그 속에는 악기가 수백 년간 쌓아온 내공과 역사가 숨어 있다. 300년 넘게 소리의 비밀을 찾으려 애썼지만, 완벽한 재현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덕수궁 찾은 298세 베수비오

1727년생, 298세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베수비오’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크레모나에서 서울로 여행 온 베수비오는 스트라디바리가 노년에 제작한 악기다. 한국·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하는 행사로, 지난달 1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특별 전시됐다. 지난 10월 31일 전시 기념 음악회에서 에밀리아 가토 주한이탈리아 대사는 “베수비오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라며 “이 악기에는 거장의 열정, 크레모나 공동체의 세대 간 지식과 기술, 연주자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돼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300여 년 세월이 담긴 스트라디바리우스엔 악기별로 이름도 따로 붙는다. 소유주의 이력이나 에피소드를 따는 경우가 많은데, 스트라디바리우스 배런 누프, 레이디 블런트, 요하임-마, 돌핀, 베수비오 등이다.

“베수비오, 결이 곱지만 짙은 애수 담겨”

덕수궁에 전시된 베수비오는 1727년생. 스트라디바리가 예술적 원숙기에 제작한 작품이다. 당시 83세이던 그는 두 아들과 가문 공방을 이끌었다. 나이가 들어도 손놀림은 정교하고 거침없었다. 베수비오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악기다. 견고하면서도 우아한 구조, 엄선된 목재, 넓고 깊은 저음과 독특한 음색이 특징이다. 1940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벤저민 브리튼의 바이올린 협주곡 초연에서 안토니오 브로사가 이 베수비오로 연주했다. 이 악기는 크레모나 사람들에게 유독 각별한데, 2005년 이탈리아계 영국인 바이올리니스트 레모 라우리첼라의 유언에 따라 크레모나로 귀환했다. 라우리첼라는 크레모나의 젊은 연주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길 원했고, 크레모나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영국 정부에 상속세를 낸 뒤에야 고향에 돌아왔다.

같은 스트라디바리우스라도 음색은 조금씩 다르다. 베수비오는 저음에서 풍부한 음색을 보여주고 스트라디바리우스 중에선 야성적인 소리를 낸다. 덕수궁 전시 기념 특별 공연에서 베수비오로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처음 활을 긋는 순간부터 소리가 실크처럼 부드럽게 나왔다. 결이 곱지만 그 안엔 애수가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육각형의 소리, 인간과 교감

“이상적인 바이올린의 소리는 가장 완벽한 인간의 목소리와 경쟁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악기도 인간의 소리를 뛰어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이올린계의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라면 얘기가 다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는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소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은 맑고 뚜렷하면서도 따뜻하고 깊은 울림을 겸비했다. 근거리에서는 따뜻하게, 원거리에서는 선명하게 들린다. 연주자들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랑하는 것은 폭넓은 음색 때문이다. 음색이 단조롭지 않고 여러 층위의 소리를 낸다고 정평이 나 있다. 단단한 소리도 특징이다. 특정 주파수 대역을 이상적으로 증폭시켜 뚫고 나가는 특성을 지녔다. 그 덕분에 소리는 공간을 꽉 채우며 힘 있게 뻗어나가고, 속삭이는 듯한 피아니시모도 명료하게 들린다. 연주자들이 때로 “비올라 같다”고 느낄 정도로 울림의 영역이 폭넓다. 고음역대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장기. 고음부로 치달으면 악기의 역량이 폭발한다. 2001년에 타계한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연주회장이 아무리 넓어도 끝없이 퍼져나가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연주자에게 악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과 교감하는 듯한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마치 악기에 영혼이 있는 것 같다는 평도 있다.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손을 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고 했다.
임지영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단순히 예쁜 소리라기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묵직함이 있다”며 “음색, 깊이, 울림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균형을 갖춘 ‘육각형의 소리’”라고 표현했다. 임지영은 2015년부터 10년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했고, 지난 5월부터는 과르네리를 연주하고 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내 몸에서 음악이 나오는 느낌이 들고, 악기와 연주자가 연결돼 마치 내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고 했다.



수백 년간 풀지 못한 ‘재료의 과학’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은 과학적으로도 확인됐다. 미국 국립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인간의 목소리 중 테너나 알토 영역에 근접한 공명을 갖고 있다. 이전의 아마티 같은 바이올린이 베이스나 바리톤에 가까운 공명을 보인 것과 다른 점이다.

그 비밀은 재료에도 숨어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북이탈리아 알프스 인근에서 자란 저밀도 단풍나무와 가문비나무의 품질 좋은 목재를 썼다. 핵심적 차이가 표면처리제 성분에서 나왔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나무 표면에는 천연수지와 벌레집 가루, 광물 안료를 혼합한 바니시(표면처리제)를 발랐다. 도포된 바니시의 화학적 조성과 두께는 지금도 연구 대상인데, 이 재료가 소리의 따스함과 깊이를 부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파비아대 연구에 따르면 베수비오는 아마씨 오일을 주성분으로 천연수지가 첨가된 바니시를 사용했다. 여기에서 철 성분도 검출됐는데, ‘베수비오Vesuvio(나폴리 근처 화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래서다. 바니시 아래층에는 소량의 석고가 포함된 바탕층을 두고, 동물성 접착제(가죽, 뼈에서 추출한 아교)를 발랐다. 이는 목재의 결을 메우고, 바니시가 과도하게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방사선 촬영 결과 바이올린은 균열 없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바니시와 접착제의 성분이 소리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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