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기업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가 “팀장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는 것을 기피하거나 두려워하는 현상, 바로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다. 승진은 여전히 많은 직장인에게 명예와 성취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피하고 싶은 자리로 변하고 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성장의 상징’이 아니라 ‘리스크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실제 수치가 이 변화를 증명한다. 2024년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63.2%가 “팀장 이상 리더직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책임과 부담이 너무 크다’(46.7%), ‘성과 압박이 심하다’(29.5%), ‘리더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다’(14.8%) 순이었다. 특히 MZ세대 응답자의 70% 이상이 “리더보다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고 답해, 리더십보다 개인의 전문성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잡코리아의 별도 조사에서도 “승진보다 조직 밖에서의 자기 성장에 더 의미를 둔다”는 응답이 10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렇다면 요즘 세대는 왜 리더라는 자리를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리더의 권한은 줄었지만 책임은 커진 시대 구조’ 때문이다. 과거의 리더는 의사결정권과 권위를 동시에 가졌지만, 오늘날의 리더는 위로부터의 통제와 아래로부터의 저항 사이에 끼여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 실시간 평가 시스템, SNS를 통한 공개적 피드백은 리더의 행동을 끊임없이 노출시키며, 작은 실수조차 비난의 대상이 된다. 리더는 더 이상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끝없는 조율과 설명의 대상이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불안한 시대의 정서적 피로감’이다. 성과 압박과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안정과 회피를 선택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직급이 오르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정서적 소모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신임 팀장 10명 중 7명이 “리더가 된 뒤 행복감보다 불안감이 더 커졌다”고 답했다. 리더십이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정서적 리스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이 ‘리더를 지원하는 문화’가 아닌 ‘리더를 감시하는 구조’로 변한 점도 크다. 실적 중심의 평가제도와 ‘성과 실패 = 리더 책임’이라는 프레임은 리더를 고립시킨다. 많은 중간관리자들이 “위에서는 지시받고, 아래에서는 비판받는 위치에 있다”고 토로한다. 이처럼 리더십이 ‘고립의 자리’로 인식될수록, 리더 포비아는 더욱 강화된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해답은 리더십을 ‘직급’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현대의 리더는 권위를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위로부터의 명령이 아닌, 옆으로부터의 공감이 리더십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조직 역시 리더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리더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리더에게는 통제보다 연결, 완벽함보다 진정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대표적인 사례로 구글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조성하는 문화가 있다. 구글은 리더가 구성원에게 완벽한 해답을 주는 대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팀 환경을 만드는 것을 핵심 리더십으로 본다. 실제로 구글의 내부 연구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성과가 높은 팀의 공통점으로 ‘심리적 안전감’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는 리더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 ‘리더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조직의 신뢰 구조’임을 보여준다.
책 '리더 포비아'를 발간한 필자는 이러한 시대의 대안으로 ‘동반향상(同伴向上) 리더십’을 제시한다. 동반향상은 리더 포비아, 즉 전통적인 위계적 리더십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에 대한 해답으로 작용한다. 리더는 혼자 앞서가는 존재가 아니라, 동료와 함께 걸으며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이러한 리더십이 자리 잡을 때, 조직은 더 이상 누군가의 통제로 유지되는 집단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끄는 신뢰 공동체로 진화하게 된다. 그 결과 구성원은 스스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을 얻게 된다.
스웨덴의 가구회사 이케아(IKEA)는 ‘지휘자형 리더’가 아니라 ‘동반자형 리더’를 지향한다. 이 회사의 리더는 팀을 통제하거나 이끌기보다, 구성원과 함께 문제를 탐색하고 성장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회의나 보고보다 ‘1:1 대화’를 우선순위에 두며, 구성원의 감정·동기·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리더의 책무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케아는 매년 전 세계 매장 관리자에게 “당신은 올해 몇 번의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었는가”를 핵심 리더십 지표로 묻는다. 실적보다 관계, 통제보다 신뢰가 리더십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동반향상의 실천 모델로 작동한다. 예컨대, 한 매장에서 팀원이 새로운 진열 방식을 제안하면 리더는 승인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함께 실험해보자”고 응답한다. 결과가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리더의 ‘관리 실패’가 아니라 팀 전체의 ‘학습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리더는 혼자서 앞장서기보다 팀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공진화의 축’으로 존재한다.
결국 리더 포비아의 본질은 ‘리더십의 실패’가 아니라 ‘리더십의 진화’다. 리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는 리더십을 새롭게 정의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이상 완벽한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며, 실수를 통해 배우는 리더를 원한다. 리더 포비아를 극복하는 길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성장의 언어로 바꾸는 용기를 갖는 데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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