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얼굴’. 올해 등단 65주년을 맞은 원로 시인 이근배 씨(85·사진)는 아직도 이 여섯 글자를 서라벌대 문예장학생 실기시험 산문 주제로 받았던 열여덟 살의 봄을 잊지 못한다.그는 사상운동과 항일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아버지의 얼굴을 열 살이 돼서야 처음 봤기 때문.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 어려운 주제여서 산문 대신 자유 주제인 시를 써냈다. 당시 백묵으로 칠판에 글제를 쓴 스승은 김동리 소설가였다.
이 시인은 최근 이 같은 사연을 담은 시 ‘하얀 여섯 글자’ 등을 수록한 새 시집 <아버지의 훈장>을 펴냈다. 그는 지난 12일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번 시집에는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했다.
시집 <대 백두에 바친다> 이후 6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는 1930년대 항일운동 내역을 인정받아 2020년 뒤늦게 훈장을 받은 부친 이선준 씨에 대한 시들이 전면에 배치돼 있다. 60여 년이 지난 뒤 ‘아버지의 얼굴’을 담은 답안지를 뒤늦게 제출한 셈이다. 그는 “이 시집 제목 ‘아버지의 훈장’은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한 아버지께 큰절을 바친다는 뜻으로 고른 것”이라고 했다.
이 시인은 아버지와 가족의 수난이라는 개인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역동을 노래해 왔다. 1961년부터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에 일곱 번,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신인예술상에 세 번 당선돼 ‘신춘문예 10관왕’ 기록을 세우며 문단의 전설로 통하기도 한다. 이 시인은 “당시 당선된 작품도 모두 분단 경험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