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가 찾아온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둘러싸고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딸 덕분에 내 입이 호강이구나.”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 중 일부다. 이들 문장에는 정체를 알 듯 말 듯한 말이 하나씩 들어 있다. ‘영문’과 ‘감투’ ‘호강’이 그것이다. 이런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얼핏 보기엔 한자어 같은데, 그러면 원래 한자에서 온 것일까. 이들은 말의 유래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만하다. 일설에는 한자어가 어원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다. 고유어인 듯, 한자어인 듯 알쏭달쏭한 이런 말들이 우리말 안에 꽤 많아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풀이는 검증된 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자어 ‘영문’과 고유어 ‘영문’을 구별해놓고 있다. “영문을 모르겠다”라고 할 때의 ‘영문’은 한자어 ‘영문(營門)’과 다른 말이라는 뜻이다. 이는 선반(물건을 얹어두기 위해 까치발을 받쳐서 벽에 달아놓은 긴 널빤지)이 한자어 ‘현반(懸盤)’에서 오고, 사냥이 ‘산행(山行)’에서, 썰매가 ‘설마(雪馬)’에서, 배추가 ‘백채(白菜)’에서, 호두가 ‘호도(胡桃)’에서 온 것과는 어원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들은 한자에서 유래한 말로, 문헌상으로도 규명된 것이라 사전에서도 어원 정보를 올려놓았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누림’이라는 뜻인 ‘호강’도 한자어로 착각하기 쉬운 대표적인 말이다. 이 역시 어원을 한자어 ‘호(好)’에서 찾는 주장이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호강’의 어원 정보를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한자에서 유래했는지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우리말 구성에서 한자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그 유래를 놓고 오해받는 말도 꽤 많다. 한자에서 온 말이 아니거나 적어도 그 관계가 불분명한데도 이를 두루뭉술 한자어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주전자’를 비롯해 ‘남편, 편지, 야속하다, 부실하다’ 같은 말을 억지로 한자어로 둔갑시켰다는 지적이 그런 것이다. 원로 언론인이자 한글학자인 고(故) 정재도 한말글연구회 회장은 생전에 우리 국어사전들의 이런 편찬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글자가 없던 옛날엔 한자를 이용해 소리를 옮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취음(取音)이다. 취음은 우리말을 한자 뜻과는 상관없이 음을 취해 한자로 적는 방법인데, 간혹 이를 원말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주전자(酒煎子), 남편(男便), 편지(便紙), 야속(野俗)하다, 부실(不實)하다’ 등의 단어가 그 예다. 지금은 우리 글자가 있으니 취음했던 한자는 버리고 한글로만 적으면 된다는 게 선생의 지적이었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