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년 동안 현대자동차그룹이 공들여온 핵심 전략 중 하나는 해외 생산망 구축이었다. 지난해 723만 대를 판매한 세계 3위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한 만큼 차량이 많이 팔리는 곳에 공장을 세우는 건 관세와 물류비 등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미국, 유럽, 인도에 신공장을 지을 때마다 일각에선 ‘국내 공장 공동화’ 우려를 내놓았다.
14일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전기차 마더팩토리’ 전략은 ‘제조업 엑소더스’ 우려를 불식하기에 충분했다. 핵심 차종 생산과 연구개발(R&D) 기능을 갖춘 ‘모(母)공장’을 한국에 두고, 해외는 생산 중심 기지로 활용해 국내 자동차 생태계를 지키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날 기아가 경기 화성 오토랜드 화성에서 준공식을 연 ‘이보(EVO) 플랜트 이스트’는 국내 첫 목적 맞춤형 전기차(PBV) 전용 공장이다. 1996년 현대차 충남 아산공장 이후 29년 만에 처음 국내에 신설한 완성차 공장이다. 연 생산 규모는 10만 대다.
기아는 이날 바로 옆자리에 ‘이보 플랜트 웨스트’ 착공에 들어갔다. 이스트보다 큰 연 15만 대 생산 규모로 짓는다. 2027년 완공되면 기아는 화성에서 매년 25만 대에 달하는 PBV 차량을 생산해 전 세계로 판매한다. 현대차그룹이 이들 공장을 확보하는 데 들이는 돈은 4조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보 플랜트를 전기 PBV의 ‘마더팩토리’로 키울 계획이다. 기아는 PBV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해 2030년까지 총 89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중 73%는 해외에 수출한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정부의 전기차 지원과 연계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생산할 기아 전기차 451만 대 중 58%(263만 대)를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한국을 전기차 마더팩토리로 점찍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이 현대차그룹의 R&D 거점인 데다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부품사와 숙련된 인력이 촘촘하게 전기차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착공식 후 열린 ‘제1차 미래차 산업전략 대화’에서 “현대차·기아가 앞장서 전동화와 미래차 산업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마더팩토리 전략은 이제 시작이다. 현대차는 2조원을 투입해 울산에 연 2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 2026년 초 완공 예정이다. 현대차는 지난 10월 말 9300억원을 들여 울산 수소연료전지 공장(연 3만 기) 착공식도 열었다.
현대차의 마더팩토리 전략을 정부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친환경차 R&D뿐만 아니라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할 때도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관련 제도를 재설계하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민석 국무총리는 “국내 첨단 자동차 생산을 늘려 수출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2035년에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10대 중 8대가 친환경차가 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화성=신정은/김보형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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