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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극장의 한계를 넘은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 '아이다'

입력 2025-11-16 09:12   수정 2025-11-17 09:07



오페라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축제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매년 펼쳐지는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다. 1913년 8월 10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처음 열린 이 축제의 개막 작품이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이다.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은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 산하 서울시오페라단(단장 박혜진)은 그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푸치니의 <토스카>, 구노의 <파우스트> 등을 제작하며 축적한 대극장 오페라 제작 노하우를 총동원해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 <아이다>를 지난 14일 무대에 올렸다.

2만 명의 관객을 품는 아레나 디 베로나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를 온전히 완성할 수 있는 공연장은 단연 3000 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었다. 전통적인 야외 공연에서 코끼리와 말이 등장하던 연출을 대신해, 이번 제작에서는 합창단과 무용수를 포함한 200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는 2022년 박혜진 단장 취임 이후 흥행을 이어온 서울시오페라단의 새로운 도전이자, 그 성과가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그동안 세종문화회관의 높은 천장과 깊은 무대를 가득 울려야 하는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성량이 큰 성악가를 섭외해야 하고 무대 바닥에 마이크를 설치해야 하는 등 여러 제약 속에서도 작품을 완성해 왔다. 그러나 이번 <아이다>에서는 그동안의 노하우가 빛을 발하며, 공연장이 지닌 규모 자체가 오히려 작품의 장대한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소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무대가 열리자 오페라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여겨지던 대극장의 넓은 공간은 마치 마법처럼 나일강이 흐르는 고대 이집트로 변모했다. 무대디자이너 김현정이 구현한 이집트 신전과 거대한 석상들은 관객에게 전통적 그랜드 오페라 <아이다>의 미학을 온전히 체험하게 했다. 김현정은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 <라 보엠>에 이어 또 하나의 성공적인 무대 제작을 해냈다.

연출은 이회수가 맡았다. 최근 국내에서 무대화되는 베르디 오페라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24년 대전예술의전당 <운명의 힘>, 2025년 대구 오페라 축제 개막작 <일 트로바토레>에 이어 이번 <아이다>까지 연출하며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베르디 전문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날(B팀) 공연에는 실력파 성악가들이 무대를 꾸몄다. 아이다 역의 소프라노 조선형은 <운명의 힘>에서 레오노레 역을 노래하며 보여준 리릭한 음색과 강인한 발성을 바탕으로 드라마틱한 표현력까지 갖춰 타이틀롤 '아이다' 역을 노래했다. 라다메스 역을 노래한 테너 국윤종은 <운명의 힘>의 알바로,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에 이어 이회수 연출의 베르디 오페라에서 세 번째 주역을 맡으며 한국 오페라계의 대표적 ‘베르디 오페라 전문 테너’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람피스 역의 베이스 심기환은 위엄 있는 음색으로 극의 현실감을 높였고, 아모나스로 출연한 바리톤 양준모는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과 강력한 가창력으로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냈다. 경기필하모닉을 이끈 지휘자 김봉미는 안정된 템포와 균형 있는 관현악으로 전막을 견고하게 이끌었으나, 금관 중심의 강렬한 음향 효과와 베르디 특유의 극적 긴장을 형성하는 오케스트레이션에서는 때때로 반 박자 느린 인상을 남겼다. ‘개선행진곡’을 비롯한 주요 장면에서도 서사적 고조보다는 편안한 음향이 두드러져, 그랜드 오페라 특유의 폭발적 에너지와는 다소 결이 달랐다.

박혜진 단장 취임 후 서울시오페라단은 후원회(울림)를 발족하며 재원 조성의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오페라 애호가들이 주축이 된 후원회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부족한 오페라단에 든든한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전과 비교해 제작 작품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연극적 요소를 결합한 ‘오플레이 오페라’, 세계적 디바 안젤라 게오르규의 출연, 파리 풍경을 무대 미술로 정교하게 재현한 <라 보엠> 등 장르 간의 확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 열람 가능한 수치로도 확인된다. 공연통합전산망(KOPIS) 2025년 상반기 공연시장 분석에 따르면,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는 서양음악(OST·게임 제외) 분야 티켓 판매율 4위를 기록했다. 대부분 해외 정상급 악단의 내한 공연이 상위권을 차지한 상황에서, 국내 제작 오페라가 거둔 성과로서는 매우 드문 사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창단 40주년을 기념하며 무대에 오른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 <아이다>는 순수 국내 성악가들로 구성된 주역들과 웅장한 무대장치, 오랜 시간 축적된 제작 역량이 결실을 본 작품이었다. 이번 무대는 서울시오페라단의 현재를 증명하고, 앞으로 한국 대극장 오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 순간으로 관객들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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