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황의 늪에 빠진 미술 시장에서 지금 유일하게 급성장 중인 장르가 있다. 컴퓨터,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을 이용해 만든 디지털 예술작품(디지털 아트)이다. 지난달 아트바젤과 UBS의 ‘2025 글로벌 컬렉팅 서베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고액 자산가 3100명의 수집품 장르 가운데 디지털 아트 비중은 13%에 달했다. 회화(24%), 조각(14%)에 이은 3위이고 사진(10%)과 설치미술(8%)보다 높다.
하지만 디지털 아트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인지도는 아직 낮다. 데이터에 불과한 디지털 아트가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거래는 어떻게 하는지, 고장 나면 어떻게 하는지, 한때 투기 광풍이 불었던 대체불가능토큰(NFT)과는 무슨 관계인지 등 의문이 가득하다. 지난 14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서울 중학동 아트코리아랩에서 국내외 관련 석학들을 모아 ‘시그널 온 세일’ 학술회를 연 이유다.
보통 우리가 ‘미술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건 유화다. 600여 년 전 유화의 대중화로 풍부한 색감 표현과 정교한 묘사 가능해지면서 미술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도약했다. 디지털 아트도 이 같은 ‘새로운 작품 도구’로 봐야 한다는 게 폴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그는 “실물이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개념미술’은 이미 현대미술에서 친숙한 장르”라고 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정연두 작가와 인세인 박 작가는 실제로 겪은 디지털 아트 거래 방식을 설명했다. 박 작가는 “데이터 파일을 담은 USB 드라이브와 함께 작품 설치 설명서, 페인트 등 물리적인 요소들을 함께 건넸다”고 했다. 정 작가는 영상 데이터와 드로잉, 항아리 등을 한 작품으로 엮었다. 그는 “이 분야 선구자인 백남준은 TV라는 물리적 실체와 그 안에서 재생되는 영상 데이터를 결합했다”며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NFT의 쇠퇴와 실패도 디지털 아트 전반의 인식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NFT를 이용한 사기 사례가 늘고 투자 실패자가 속출하면서 ‘디지털 아트=투기’라는 편견이 생긴 것. 카스 피노 라딘 전 뉴욕현대미술관 미디어 보존 담당자는 “정부는 안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업계는 기술을 통한 신뢰 회복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런 문제점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아트는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다. 세계 최대 경매사 크리스티에서 디지털 아트 부서를 담당했던 세바스티안 산체스는 “크리스티는 지난 9월부터 디지털 아트를 일반적인 현대미술과 함께 다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한국 미술계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성수영 기자
한국경제신문·예술경영지원센터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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