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는 MBK를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 반열에 올린 거래로 꼽힌다. 글로벌 PEF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한국의 초대형 거래에는 항상 MBK가 있다’는 인식을 글로벌 투자자에게 각인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우려가 컸다. 홈플러스 성장 전략도 없이 “너무 질렀다”는 평가가 인수 초기부터 나왔다. 약 5조원을 빌리는 차입매수(LBO) 방식은 그런 우려를 더 키웠다. 유통업이 성장을 멈추더라도 전국 곳곳의 핵심 부동산을 팔면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MBK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내놓은 엑셀 숫자가 근거였다.
그러나 MBK가 믿었던 상업용 부동산과 오프라인 유통 경기가 동시에 무너지며 상황이 급변했다. 2018년 홈플러스 매장 부동산을 대거 유동화하기 위해 리츠 상장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홈플러스 직원 1만4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도 발목을 잡았다. 경쟁자로 생각지도 않던 쿠팡은 소프트뱅크의 지원을 받아 가격 전쟁에 나섰고, 코로나19로 e커머스가 급성장하며 오프라인 유통의 쇠퇴가 가속화했다.
속수무책이었다. 부동산 금융만으론 막을 수 없었다. 약 150억원을 투입한 맥킨지의 컨설팅에 따라 수년을 ‘경영 진단’에만 허비한 것도 문제였다. 이후 신선식품, 근거리 배송 등 e커머스 대응 필요성이 뒤늦게 나왔지만, 곳간은 말랐고 투자는 지연돼 경쟁력이 빠르게 악화했다. 올해 3월 갑자기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배경이다.
PEF 인센티브가 ‘펀드 규모’에 달려 있다는 점도 도덕적 해이를 낳았다. 국내 대형 PEF들은 연기금·공제회 출자 일정에 맞춰 펀드 규모를 경쟁적으로 키워왔다. 펀드가 커질수록 관리보수 비용(1.5%)이 늘고, 더 큰 딜을 성사시켜야 다음 펀드 조성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직전 펀드를 빠르게 소진해야 했고, 대형 딜을 무리하게 성사시킨 사례가 이어졌다.
홈플러스 사태는 도입 20년을 맞은 국내 PEF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좋은 회사를 비싸게 사고, 금리가 낮을 때 더 비싸게 파는’ 모멘텀 투자에만 열을 올리다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부채를 인수 회사에 전가하는 구조, 자산 매각 등 금융기법은 대중의 ‘먹튀’ 오해로 이어졌다.
PEF의 투자 실패는 엄정하게 비판하되 PEF의 순기능 자체를 부인할 이유는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6월 일본에서도 KKR이 매출 11조원, 임직원 4만5000명의 자동차 부품사 마그네티마렐리의 파산을 기습 신청했다. KKR은 투자금을 전액 소각했고, 미즈호은행 등 채권단이 1조4000억원의 DIP(debtor in possession) 대출을 투입해 파산을 막았다. 한 국내 PEF 대표는 “PEF의 경영 실패 자체는 비판받더라도 일본처럼 자본시장의 일은 시장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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