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100.05
(71.54
1.78%)
코스닥
924.74
(5.09
0.55%)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다산칼럼] 28년 전 위기 뒤엔 'NATO'

입력 2025-11-16 18:21   수정 2025-11-18 10:19

1997년 11월 21일 한국은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를 맞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수많은 기업이 쓰러졌고 직장엔 정리 해고 칼바람이 불었다.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긴축 예산을 짜야 했다. 사회 전체가 강제 구조조정에 휩싸였다.

IMF 구제금융 전, 위기를 알리는 신호는 차고 넘쳤다. 무리한 외화 차입, 중복 투자, 기업과 은행의 부실, 산업 경쟁력 저하, 고비용 저효율 구조 등 병폐가 쌓였다는 경고가 오래전부터 쏟아졌다. 게다가 한보, 삼미, 진로, 기아 등 대기업이 연쇄 도산했고 태국 밧화 폭락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번지고 있었다. 외국인 자금 이탈도 뚜렷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펀더멘털은 이상 없다”며 안이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한국은 ‘NATO’라는 조롱을 들었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오래전부터 나왔는데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No Action Talk Only)는 지적이었다. 컨설팅회사 부즈앨런해밀턴은 한국에 부족한 건 달러보다 리더십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이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IMF 사태를 ‘신뢰의 위기’라고 했다. 문제가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IMF 위기로 한국은 벼랑 끝에 몰렸다. S&P는 두 달 만에 한국 신용등급을 10단계나 떨어뜨렸다. 외국인은 앞다퉈 돈을 빼가고 있었다. IMF 지원을 받으려면 좋든 싫든 IMF가 내민 개혁 청구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한 결과 외부 힘에 등 떠밀려 가혹한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IMF 구조조정 처방이 옳았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나마 그때 이뤄진 기업, 금융 부문 등의 개혁으로 한국 경제 체질이 개선된 건 사실이다. 개혁으로 고름을 짜내고 그 자리에 새살이 돋으면서 이후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IMF 위기를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환위기 이후 28년이 지났다. 지금 한국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때 못지않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저성장이 굳어지며 잠재성장률은 조만간 0%대로 추락할 판이다. 저출생·고령화로 과거에 짜인 사회 시스템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도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와 경직된 노동시장, 틀에 박힌 교육 제도는 여전하다. 국민연금 고갈도 시간문제다. 중국의 부상, 미·중 패권 경쟁, 보호무역 득세, 인공지능(AI) 시대 도래 등 외부 변수도 하나같이 국가의 명운을 뒤흔들 수 있다.

단순히 돈 풀고 금리 낮춘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 방한한 IMF 총재도 끈질긴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모두 해묵은 과제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혈관의 찌꺼기’를 거론하며 규제 금융 공공 연금 교육 노동 등 6대 개혁을 화두로 꺼낸 건 그래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이 이념보다 실용을 내세우는 점도 기대를 갖게 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역대 정부도 말은 많이 했다. 대부분 말잔치에 그쳤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을 하겠다는 건지도 중요하다. 그동안 민주당은 구조개혁에 소극적이었다. 노동계가 원하는 ‘노란봉투법’은 밀어붙이면서도 주 52시간 근무제는 약간의 유연성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자동안정장치 도입 같은 연금 구조개혁에도 부정적이었다. 개혁이 행여 지지층의 눈높이에서 멈춘다면 개혁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2000년대 초 독일 부흥을 이끈 하르츠 노동개혁은 좌파 정부 주도로 노동계의 반대를 뚫고 이뤄졌다. 국가 지도자라면 정파적 이익보다 국익을 앞세워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물론 개혁은 쉽지 않다. 고통이 따른다.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대안도 찾아야 한다. 제대로 된 개혁을 해낸다면 이재명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평가될 것이다. 말만 앞세운다면 이전 정부처럼 위기를 방치하게 될 뿐이다. 그건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28년 전에도 위기 뒤엔 ‘NATO’가 있었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