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그너의 음악은 마치 마약과도 같습니다. 한번 그의 음악에 빠져들게 되면 바그너와 함께 아침을 맞고, 종일 바그너를 생각하며, 바그너와 같이 잠들고 꿈꾸게 됩니다. 마치 바그너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두 번의 휴식시간까지 포함해 전체 공연 시간만 무려 5시간 40분. 신비한 묘약으로 인해 지독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한 연인의 비극적 서사를 그린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막을 올린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 공동 주최로 다음달 4~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이다. 2005년 2막 부분 연주, 2012년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진행된 적은 있지만, 전막 공연으로는 국내 초연이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17일 서울 소공로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고도의 집중력과 음악적 역량을 요구하는 대작”이라며 “이번 작품은 한국 오페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출신인 서울시향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이 지휘봉을 잡고, 2023년 독일 콧부스 국립극장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성공적으로 선보인 스위스 출신 슈테판 메르키가 연출을 맡는다.
츠베덴은 “바그너의 음악은 듣는 사람의 목을 움켜잡은 뒤 절대 놓아주지 않으며, 결국엔 그의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라고 말했다. 츠베덴은 2019년 세계적 권위의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에서 홍콩 필하모닉을 아시아 악단 최초로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되도록 이끈 명장이다. 츠베덴은 홍콩 필하모닉을 이끌고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 녹음을 진행했을 만큼 그의 음악에 진심이다. 츠베덴은 “바그너의 음악은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둘 중 하나”라며 “그의 작품을 함께 연주할 것을 생각하니, 마치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사탕 가게에 들어온 듯한 흥분감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선 공간도 범상치 않다. 원작에선 성과 바다, 선박을 배경으로 삼지만, 메르키 연출에선 우주와 우주선이 주무대가 된다. 무대를 거대한 우주선 형태로 만들고, 그 중앙에 나선형 구조물을 설치해 이분법적 세계관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메르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엔 끊임없이 출렁이는 선율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그리움과 욕망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바그너의 세계를 가장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우주일 것이라 생각했다”며 “바다는 우주, 배는 별들로 설정했으며, 공간과 조명 등을 활용해 초월적 사랑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화려한 출연진 역시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한 헬덴(영웅적) 테너 스튜어트 스켈톤이 트리스탄 역을 맡는다. 여기에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주역을 맡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가 여주인공 이졸데 역으로 출연한다. 이외에도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와 소프라노 엘리슈카 바이소바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으로 호흡을 맞춘다. 포스터는 “이졸데 역은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 배역”이라며 “성악가가 되기 전 조산사로 일하며 새 생명을 받아낸 경험이 정신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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