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단독 대표에 오른 김정균 보령 대표가 ‘글로벌 세포독성항암제 시장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다’는 사업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동안 각자대표 체제로 제약 부문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온 그는 3월부터 제약 부문도 총괄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가 뛰어들지 않는 시장에 진입해 ‘이전엔 없던’ 사업 모델로 성공 신화를 쓰는 게 목표다.

◇글로벌 항암제 시장 진출
김 대표는 17일 기자를 만나 “프랑스 사노피의 항암제 ‘탁소텔’ 글로벌 사업권을 인수한 것은 보령이 세계적 제약사로 도약하는 첫걸음”이라며 “보령 예산캠퍼스는 아시아 세포독성항암제 생산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탁소텔 인수로 내년부터 보령의 해외 매출이 늘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제약사의 오리지널 항암제를 인수하는 전략을 펼쳐 보령을 ‘세계적 세포독성항암제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가 단독 대표에 오른 뒤 제약 부문에 관해 구체적 사업 계획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항암제 시장이 ‘첨단 기술 경연장’으로 바뀐 뒤 1세대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세포독성항암제는 ‘공급난’에 허덕이고 있다. 세포독성항암제를 생산하던 제약사들이 앞다퉈 ‘돈 되는’ 항체, 펩타이드 등으로 시설을 전환하면서다. 생산이 급격히 줄지만 세포독성항암제는 여전히 환자 치료에 폭넓게 활용된다.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 등 면역항암제가 개발되자 이와 함께 투여하는 병용 요법으로 세포독성항암제 쓰임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오리지널 생산 노하우 CDMO에 접목
김 대표는 이런 변화를 ‘기회’라고 판단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시장 수요가 꾸준한 분야에 진출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 일라이릴리의 세포독성항암제 ‘젬자’와 ‘알림타’ 국내 판권을 각각 2020년, 2022년 인수한 뒤 성공 가능성도 확인했다. 젬자는 보령이 국내 판권을 인수한 지 4년 만에 매출이 143억원(2020년)에서 295억원(2024년)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알림타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오리지널 약 생산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기술이전 과정에서 제조 역량도 검증받았다”며 “대만 로터스, 싱가포르 쥴릭파마 등이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을 맡긴 배경”이라고 말했다.
최대 2878억원에 사업권을 인수하기로 한 탁소텔은 이런 사업 모델을 해외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을 포함해 19개국은 공장 인허가 절차 등만 마무리되면 예산캠퍼스에서 만든 탁소텔을 그대로 수출할 수 있다. 지난해 탁소텔 글로벌 매출은 7000만유로(약 1185억원)다.
예산캠퍼스는 항암제를 연간 600만 바이알(병) 생산할 수 있다. 유럽에 세포독성항암제를 수출할 수 있는 인증(EU-GMP)도 마쳤다. 미국 수출이 가능한 인증(cGMP)은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세계 세포독성항암제 공장이 대부분 노후 시설이어서 제네릭 CDMO까지 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생산 단가가 낮지만 고혈압 신약인 ‘카나브’만큼 수익률이 높다”고 했다. 지난해 세계 세포독성항암제 88개 품목이 13조원 규모 시장을 형성했다. 보령은 이들 중 19개 품목, 10조원 규모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인류 건강에 꼭 필요한 회사 될 것”
페니실린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 결정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다. ‘남들이 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분야’에서 기회를 찾은 것이다. 지난 12일 안산캠퍼스 페니실린 생산시설을 2777㎡에서 4364㎡로 확대하기 위한 증설 착공식을 열었다. 보령은 국내 페니실린 물량의 60%가량을 공급하는 국내 최대 제조사다. 수출까지 염두에 둔 결정이다.
그는 “미국, 유럽 인증 수준의 시설을 갖추면 페니실린 수출도 가능할 것”이라며 “오리지널 수요가 꾸준하고 CDMO 시장 확대 기회가 있는 세포독성항암제를 중심으로 추가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보령이 ‘인류 건강에 꼭 필요한 약을 만드는 기업’으로 자리 잡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이지현 기자/사진=문경덕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