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로봇을 적용해 물류센터를 업그레이드한 이후 물류비가 절반이나 줄었어요. 회사의 새로운 미래를 찾았어요.”지난달 30일 이랜드패션 천안 첨단물류센터를 찾았다. 당시 센터 구축을 주도했던 온라인 물류 팀장은 기대에 들떠 이렇게 말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새로운 물류센터 구축으로 제품 가격 경쟁력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기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난 15일 물류센터가 화재로 전소되면서다.
이랜드패션 물류센터가 화마에 휩싸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위층에서 시작된 불이 로봇이 있는 1층 첨단물류센터를 비롯해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월 운영을 시작한 첨단물류센터는 이렇게 5개월 만에 허망하게 잿더미로 변했다.
기자가 참관했던 물류센터는 놀라웠다. 사람의 개입 없이 AI 시스템과 수백 대의 로봇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물건을 분류해냈다. 지게차가 경고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짐을 옮기고, 사람이 무거운 종이박스를 들고 적재해야 하는 여느 물류센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랜드는 이런 첨단 시스템에 힘입어 기존 대비 물류비용을 50% 절감했다. 근로자는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대중적 관심도 높았다. 유튜브 채널 ‘한경코리아마켓’에 올린 물류 로봇 영상은 4만5000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랜드는 2023년 말 첨단물류센터 구축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1년 반 만에 구축을 완료했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는 외주를 최소화했다. 개별 기술을 통합해 새로운 시스템으로 만든 주역은 이랜드 직원들이다. 20년 넘게 이랜드에서 일한 현장 관계자는 “혁신에 대한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고 했다.
이랜드 경영진에게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만큼 절박했다. 이랜드 토종 제조직매형의류(SPA) 브랜드 스파오는 유니클로,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다. 혁신이 없으면 규모의 경제에 밀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물류뿐만이 아니다. 마케팅에서도 이랜드는 접근법 자체가 달랐다. 제품을 만들고 가격을 책정하는 기존 프로세스에서 벗어나 가격을 먼저 정한 뒤 제품을 만들었다. “이랜드 임원들 사이에서 ‘가격을 올립시다’는 금기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첨단물류센터는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물류센터는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지만, 이랜드는 잿더미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품을 만한 역량을 갖췄다. 이번 화재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랜드 임직원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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