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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개미·기업, 해외투자 폭증…최대 경상흑자에도 '달러 가뭄'

입력 2025-11-17 17:41   수정 2025-11-19 09:53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한국 외환당국은 단기 외채 흐름에 주목했다. 외화 빚 상환 요구가 몰리면 급격한 외화 유출이 발생해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이후부터는 그런 부담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해외 투자가 늘어 한국이 순대외자산국이 됐기 때문이다.

급격한 외화 유출과 환율 급등 우려가 사라진 자리에는 ‘꾸준한 환율 상승’이라는 반대급부가 따라왔다. 기업과 개인,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환율에 구조적인 상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든 경제 주체 해외투자 늘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대외자산-대외부채)은 2014년 3분기 127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플러스를 나타냈다. 11년가량이 흐른 올해 2분기 기준 순대외자산은 이보다 100배 가까이 많은 1조304억달러까지 불어났다.

한국의 순대외자산이 급증한 배경엔 경제주체들의 적극적인 해외 투자가 있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2001년 해외 투자를 시작했지만 초기엔 증가 속도가 더뎠다. 2000년대까지는 채권 위주로 투자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주식 중심의 공격적 투자를 했다. 2016년 해외 주식과 채권을 포함한 운용액이 100조원을 넘어섰고, 현재는 다섯 배가 넘는 580조원까지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세계 증시가 급격한 조정을 받은 이후엔 ‘서학개미’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2020년 152억달러에서 작년 말 1161억달러로 여덟 배로 증가했다. 지난달엔 한 달 만에 68억달러어치를 순매수해 2011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기업은 해외 직접투자를 늘리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기업 등의 해외 직접투자액은 2022년 817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올해 상반기 해외 직접투자액은 29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줄었지만 2014년 1년간 투자액(288억달러)보다 많다.

달러를 국내에 공급하는 요인인 외국인의 국내 투자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유출 규모에 크게 못 미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가장 큰 경상흑자에도 환율이 올라가는 건 외국인의 국내 투자보다 네 배 많은 (내국인의) 돈이 해외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의 환율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은 이런 구조적 달러 유출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에도 구조적으로 미국으로의 자금 이탈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내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웃도는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성장 악화→달러 유출 ‘악순환’
구조적 고환율은 해외 선진국과 한국의 기초체력(펀더멘털) 차이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투자 자산이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4%로 2% 밑으로 내려왔다. 2000년대 초반 약 5%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혁신이 지속되는 미국은 잠재성장률 반등에 성공했다.

주변 경쟁국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올해 경제가 6% 가깝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대만은 17일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이 30.64대만달러를 기록했다. 연초 32대만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것에 비해 환율이 하향(통화 가치는 상승) 안정되는 추세다.

문제는 자본 유출 흐름이 이어질 경우 국내 투자 부진으로 성장률이 더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준형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에서 관찰된 흐름과 유사하게 한국에서도 생산성 향상 둔화가 자본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져 국내 투자가 해외 투자로 전환되고 있다”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 구조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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