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크무늬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버버리는 '영국 럭셔리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비가 많이 내리고 우중충한 영국 날씨에 딱 맞는 개버딘 원단의 방수 코트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버버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루이비통 등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를 따라하려던 게 패착이었다. 버버리는 원래 정체성이었던 코트, 스카프 등 의류 중심에서 벗어나 가방 등 가죽 제품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가격대도 대폭 올렸다.
'하이엔드도 아닌데, 비싼 애매한 브랜드'란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자 버버리의 실적은 고꾸라졌다. 여기에 버버리의 핵심 시장인 중국 '큰손'들까지 지갑을 닫으면서 실적난이 심화했다. 주가도 흘러내리면서 지난해 9월엔 영국 대표 주가지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100)에서 퇴출당하는 굴욕까지 당했다.

지난해 '최악의 해'를 보냈던 버버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중국 명품 소비가 바닥을 찍고 반등하면서다. 18일 외신에 따르면 버버리는 2025회계연도 2분기(7~9월) 기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 늘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2년 만에 첫 분기 매출 증가세다.
미미한 수준의 반등이지만, 시장은 이를 '버버리의 부활'로 받아들였다. 외신 보도 직후 버버리 주가는 장중 8.45%까지 뛰었다. 현지 애널리스트들도 "버버리가 느리지만 확실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2% 증가'가 이런 반응을 얻어낸 건 매출 반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전략의 결과라서다. 버버리는 지난해 7월 마이클 코어스와 코치를 이끌었던 조슈아 슐먼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고, 트렌치코트·스카프 등 핵심 카테고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가죽 제품 비중은 과감히 줄이고, 버버리의 근본이자 정체성인 아우터웨어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지난 5월엔 전체 직원의 5분의 1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수익성 강화에도 나섰다.

버버리의 변화는 최근 중국 명품 수요가 되살아나는 상황과 맞물리며 빛을 보기 시작했다. 버버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국 Z세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8% 급증했다. 슐먼 CEO는 "버버리가 소비자들이 오랜 시간 사랑해온 브랜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버버리의 부활은 주가에서도 확인된다. 17일 오후 기준 버버리 주가는 11.91파운드다. 버버리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소폭 내리긴 했지만, 올해 초와 비교하면 21% 이상 올랐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도 최근 버버리 투자의견을 ‘보류’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하고 목표 가격을 12파운드에서 15파운드로 올렸다.
일각에선 올 4분기가 버버리의 '진짜 시험대'란 분석도 나온다. 명품 브랜드들의 연중 최대 대목이 크리스마스 등 연말인데, 버버리가 경쟁이 치열한 이 시기에 '플러스 실적'을 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버버리는 이 기간 450~1150달러 사이의 캐시미어 스카프를 선보이고, 아우터웨어를 중심으로 한 가을·겨울(F/W) 컬렉션을 전면에 내세울 계획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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