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인간 중심적 접근을 통해 모두가 인공지능(AI)의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지난 11월 1일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경주 선언’. 그중에서도 APEC AI 이니셔티브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AI가 세계경제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며, ‘모두를 위한 AI 전환’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AI 자동화와 일자리 변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이러한 전환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정의로운 전환은 책임 있는 기업경영을 넘어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 등 모두가 함께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AI 자동화의 현실, 이미 시작된 ‘일자리 대전환’
AI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대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특히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에이전틱(agentic) AI’는 스스로 작업을 기획·수행·조정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람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대체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2033년까지 물류를 포함해 전체 사업의 75%를 자동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마존뿐 아니라 IBM은 향후 5년간 경영 지원의 30%에 해당하는 약 7800개 직무를 AI로 대체할 계획이며, 월마트는 AI의 영향을 고려해 향후 3년간 자사 글로벌 인력 규모를 동결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에 혁신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AI 활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다. 글로벌 기업의 AI 기반 기술 활용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기업이 기술 활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흥미롭게도 아마존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10월 미래 일자리를 위한 새로운 투자 비전 ‘Future Ready 2030’을 발표했다. 최소 5000만 명이 미래 직업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로봇과 자동화가 빠르게 도입되는 물류 현장에서 해고 대신 재교육 및 직무 전환 트랙을 제시해 일부 인력을 새로운 기술직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다.
다른 글로벌 기업도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다. 아마존과 함께 미국 최대 고용주인 월마트는 2019년부터 ‘Live Better U’ 프로그램으로 200만 명에게 AI 등 기술 교육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AT&T는 10만 명에게 미래 기술 교육을, PwC는 27만 명에게 AI·자동화·데이터 교육을 제공 중이다.
한편으로는 대규모 인력을 감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원 기술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기업의 선택은 언뜻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업의 실리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 있다. AI는 기존 직무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 직무를 만들어낸다. 이를 외부 충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급속한 기술 변화 속에서 내부 인력을 전환하는 전략은 생산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다. 여기에 직원 만족도, 이직률 감소, 브랜드 이미지, 정부 인센티브까지 고려하면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은 기업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선택이 된다.

AI 3대 강국 도약의 조건, 정의로운 전환
그러나 AI 시대 일자리 전환을 위한 교육 등 원활한 대비를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자동화로 줄어드는 직무와 새롭게 생겨나는 직무를 구분해 내부 전환 전략을 마련한다면, 정부는 재교육과 재배치에 필요한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AI 전환과 일자리 변화가 가속화될수록 정부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AI 전환에 대비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활발히 추진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고용이 불안정한 직무에 있는 노동자들이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무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직업 전환 계약(transition collective)’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 인력 감축 대신 내부 인력을 재교육으로 전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영국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 지원 교육 프로그램 ‘Skills Bootcamps’를 통해 AI·디지털 기술 관련 역량을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부문 기술자들을 AI 전문가로 전환하기 위한 12주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현재 한국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AI 기술 투자와 인재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AI 산업전략’을 발표하며, 반도체와 데이터 생태계 강화, AI 법제화 등 기반 구축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AI 자동화로 인한 고용 충격과 전환기 노동 정책에 대한 준비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AI 기술 도입이 기업의 경쟁력 확보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안정적 전환으로 이어지도록 전환 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와 법·제도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또 산업별·직무별 AI 도입이 가져올 직접적 영향을 진단하고, 새롭게 생겨날 일자리와 기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한 전국적 전환 교육 체계와 직업 매칭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AI 기술 시대의 고용 불안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설계 문제다. 정부가 산업과 노동 전환을 함께 설계할 때, 기술은 일자리를 파괴하는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성과 포용적 성장을 이끄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세계 최대 기업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 기업들이 유엔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 달성과 ESG 경영을 내재화하도록 가이드라인과 플랫폼을 지원한다. UNGC 한국협회는 다양한 파트너와 국내 ESG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고,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 기업의 실행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