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려 126년이다. 회사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금융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금융그룹은 국내 금융 산업의 태동과 성장, 제도 혁신, 글로벌화 흐름의 중심에서 시대 변화를 이끌어 왔다.
우리금융의 뿌리는 1899년 1월, 고종황제의 내탕금을 비롯해 대한제국 황실 자금, 정부 관료 및 조선 상인 자본이 출연해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 초기에는 일반 시중은행 기능과 더불어 중앙은행의 역할까지 병행하며 자주적 금융 기반을 지키는 데 주력했고,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며 민족금융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이어 1909년 7월에는 현 종로금융센터 자리인 ‘광통관’에 민족은행 최초의 근대식 은행 건물을 준공하며 금융기관으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최초 근대 은행으로 출발…산업화 뒷받침
그러나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조선총독부의 금융 정책에 따라 은행명은 ‘조선상업은행’으로 변경됐고, 금융 환경 변화 속에서 1932년에는 조선신탁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이후 조선신탁은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사명을 바꾸며 본격적인 민간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50~1980년대 한국 경제는 산업화를 통해 제조업·수출·국영기업 시스템이 확대되는 구축기였고, 이는 곧 금융의 체질까지 바꿔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동반했다. 우리금융도 이 흐름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며 금융 인프라와 서비스 혁신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 해외 선진 금융기법 도입을 위해 미국, 일본, 유럽 등의 금융 회사에 직원을 파견했고, 1959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여성 전용 영업점인 ‘숙녀금고’를 개설해 금융 접근성의 사회적 정의를 현실로 만들며 시대를 앞섰다.
1967년에는 시중은행 최초로 외국환 업무를 개시, 수출입 금융, 무역금융, 지급보증 등 외환 관련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확대하며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전면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8년에는 일본 도쿄지점을 개설해 국내 은행 최초로 일본 금융 시장에 진출했다. 이 시기 우리금융의 역사적 발전은 국내 금융의 폐쇄성 극복, 글로벌 금융 실무 능력 도입, 국제 자본시장 참여라는 3단계 진화 과정을 밟으며 한국 금융의 경쟁력과 국제 기준을 확립하는 기점이 됐다.
1977년에는 서울과 부산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국내 최초 온라인 업무 기술을 성공적으로 가동하며, 한국 금융정보기술(IT) 시대의 출발점을 열었다. 이는 단순한 전산 혁신이 아니라 ‘지점 기반 금융’에서 ‘네트워크 기반 금융’으로의 패러다임 혁신이었다.
위기 속 재편…국내 1호 금융지주 출범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 시스템 전체를 흔들었고, 금융권은 대대적인 정리, 통합,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는 곧 산업 구조 재편의 순간이기도 했다.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통합을 통해 ‘한빛은행’을 출범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2001년 평화은행 은행 부문 분할 흡수까지 완료하며 초대형 시중은행 체제를 구축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 금융 산업은 소매금융, 기업금융, 투자금융, 글로벌 금융 등 기능별 분업형 모델에서 통합형 그룹 시너지 모델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2001년, 국내 금융 산업이 민영화와 효율화 기조 속에서 새로운 경쟁 체제를 모색하던 시기, 우리금융은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을 중심으로 카드, 종합금융, 자산 운용 등 다양한 금융 기능을 아우르는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는 단일 은행 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그룹 시너지 기반의 포트폴리오 경영을 구축한 첫 단계로 평가된다.
같은 해 12월에는 평화은행의 은행 부문을 분할·흡수합병하며 영업 기반을 확장했다. 특히 소매·중소기업 고객군을 중심으로 한 기존 경쟁력을 보완해, 그룹의 고객 저변 확대 및 전국 단위 영업망 강화에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02년에는 한빛은행의 사명을 ‘우리은행’으로 변경하며 브랜드 정체성 통합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는 기존 개별 기관들이 보유하던 역사적 상징성과 시장 인지도를 ‘우리’라는 단일 브랜드 아래 집약해, 그룹 차원의 통일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고객 중심 가치를 강조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그러나 성장의 궤적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우리금융지주는 계열사 매각과 조직 축소라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공적자금 회수 정책으로 계열사 대거 매각
이 과정에서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우리캐피탈,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이 순차적으로 매각되며 그룹 체계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그 결과 우리금융지주는 한때 ‘증권 없는 금융지주’라는 이례적인 형태로 남게 됐고, 그룹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전략적 재정비가 불가피한 시기를 맞이했다.
이는 전략적·조직적 후퇴처럼 보였지만, 이후 재정비 후 재도약이라는 큰 전략을 위한 준비 과정이 됐고, 결국 2019년 우리금융지주는 2기 지주 체제로 재출범하며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2024년에는 오랜 과제였던 완전 민영화에 성공하며, 비로소 독립적 시장 주체로서의 경쟁력을 완성하게 된다.
2019년 이후 우리금융지주는 공격적인 비은행 부문 확장 전략에 돌입하며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추진해 왔다. 우리글로벌자산운용과 우리자산신탁을 인수하고, 2020년에는 우리금융캐피탈, 우리금융저축은행을 편입하며 여신 및 서민금융 라인을 확장했다. 2023년에는 우리벤처파트너스를 자회사로 편입해 투자 및 벤처 생태계 진출 기반을 확보했고, 2024년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을 통합해 우리투자증권을 출범시키며 증권 부문까지 정상 복원했다.
이어 2025년에는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편입함으로써 은행, 증권, 보험을 모두 갖춘 종합금융그룹 체제를 완성하고, 방카슈랑스 기반의 상품 시너지와 자본 효율을 기반으로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서 구조적 완성을 이뤄냈다.

완전 민영화·종합금융 복원…재도약 발판
우리금융 관계자는 이번 보험사 편입에 대해 “자본비율 하락 요인을 최소화하면서 종합금융그룹 체제를 완성했다”며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고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방카슈랑스 판매 비중에서 동양·ABL생명 비중은 3개월 만에 약 13%포인트 늘며 22.5%까지 확대됐다.
자본 지표도 개선됐다. 그룹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2.92%로 집계돼 환율 상승, 인수합병(M&A) 부담 등 불리한 환경에도 전 분기 대비 약 10bp 상승했다. 이로써 연말 목표치 12.5%는 물론, 중장기 목표인 13% 달성도 조기에 가시화되고 있어 향후 밸류업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우리금융은 재무 성과뿐 아니라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핵심 가치로 삼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사회공헌, 포용금융 체계를 강화해 왔다. 대표 사업으로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생태계를 조성하는 ‘굿윌스토어 지원’, 의료 취약 아동·청소년 프로젝트 ‘우리루키’, 다문화·아동·청소년 지원을 위한 ‘우리다문화장학재단’, 취약차주 금융안전망 구축 등이 있다. 특히 굿윌스토어 모델은 단순 기부를 넘어 ‘기부, 판매, 고용, 자립’으로 이어지는 지속형 사회공헌 구조로 평가된다.
ESG 임팩트 보고서 첫 발간
2025년에는 그룹 최초로 ‘ESG 임팩트 보고서’를 발간해 ESG 가치를 금액으로 측정하는 평가 모델을 제시했다. 보고서 기준 2024년 ESG 가치 창출 규모는 5조1619억 원으로, 환경(E) 9174억 원, 사회(S) 2조1706억 원, 지배구조(G) 2조739억 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임 회장은 “우리금융이 사회 곳곳에 미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정직하게 측정해 이해관계자와 공유하는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포용금융 정책도 별도로 정비했다. 우리금융은 포용금융 정책을 통해 금융소외계층·취약차주를 대상으로 한 금리 인하,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상담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보증부 대출과 연계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대한천일은행에서 출발한 우리금융은 126년간 금융·사회·국가 시스템과 맞물려 진화해 왔으며, 현재는 단순한 금융지주를 넘어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금융 생태계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는 글로벌 확장, 비은행 중심 자본 효율화, 기술 기반 플랫폼 전환, 사회적 가치 정량화 등 새로운 과업에 나설 전망이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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