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3년 전만 해도 해외 '큰손' 대부분은 아시아권 자산운용사 중 중국 운용사들만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확 달라졌어요. 포트폴리오 내 중국 비중을 줄이고 한국 기업들로 어떻게 채울지부터 묻습니다."18일 <한경닷컴>은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서 김신 KB증권 글로벌사업그룹장(전무)을 만났다. 해외 '큰손' 세계에 익숙한 김 전무에게 한국 증시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김 전무는 HSBC증권 한국 대표로 셀사이드(증권 업계) 경력을 다진 뒤 홍콩에서 범아시아 롱숏 헤지펀드를 직접 운영했다. 2023년 1월부터는 KB증권에서 국내에선 아직 개념이 낯선 '캡 인트로'(캐피털 인트로덕션) 조직을 이끌고 있다. 국부펀드와 연기금, 헤지펀드 등 '해외 큰손'들과 '국내 운용사'를 연결해 주는 역할이다. 업계에서도 소수의 대형 증권사만이 프라임브로커리지 서비스(PBS) 부서에서 '캡 인트로' 업무를 하고 있는데, KB증권은 그 가운데에서도 선제적으로 조직을 꾸렸다. 벌써 담당 인력만 7명이다. 이들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3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위원회(ADIC)가 자금을 맡겨 대신 굴릴 국내 운용사들을 주선해 화제를 모았다.
캡 인트로 사업은 증권사로선 당장은 '주선료' 수준의 수익에 그친다. 잘 하는 운용사를 소개해 주고, 이것이 높은 운용 수익률로 이어져 해외 기관의 신뢰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씨 뿌리는 시간이 긴' 사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KB증권이 이 조직에 힘을 주는 데는, 한국 자본시장으로 향하는 '머니 무브'가 언젠가 본격화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단 설명이다. 김 전무는 "3년여 전부터 해외 기관들이 아시아 중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의 비중을 줄이려는 추세를 봤다. 2018년부터 본격화한 미·중 분쟁의 여파였다"며 "한국 운용사들을 소개할 시기가 오고 있단 판단이 섰다"고 설명했다.
"신흥국과 아시아를 크게 묶어보면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이 상대적으로 싼 시장이 중국과 한국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중국 비중을 빼면서 동남아와 인도처럼 이미 비싼 시장으로 갈아타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비중을 늘릴 수 있는지 검토하는 자금이 훌쩍 늘었습니다."
김 전무는 "국내 운용사는 10명도 채 안 되는 인력으로 10개 넘는 전략을 동시에 운용하는 곳들이 많다. 성장주·IPO·메자닌 등 유행에 맞춰 상품을 붙이는 구조"라며 "리테일 자금을 끌어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전략이겠지만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선 전문성, 일관성에 의문을 갖는다"고 했다.

국내 운용사들의 영업 방식도 해외와는 크게 달랐다. 그는 "'한국에선 어느 증권사에서 잘 나가던 스타 매니저가 독립해서 펀드를 만들었다더라'는 식의 스토리텔링이 여전히 먹히지만, 해외 기관은 운용역 개인보다는 운용사의 전반적인 요소들을 모두 점검한다"며 "국내 운용사들이 리스크 관리 체계를 확립하고 전략별 트랙레코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 전체로 확대된 1차, 집중투표제 도입 의무화·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이 골자인 2차 등이 잇달아 통과된 데 이어 계속해서 '더 센 상법'이 추진되고 있다.
김 전무는 "올 들어 상법 개정, 배당소득세 세제 개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등 여러 자본시장 개선 과제들이 추진됐거나 추진되고 있다"며 "말로만 그치지 않고 법 개정까지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국이 진짜 달라졌습니까"란 질문을 하반기 들어 김 전무가 숱하게 받고 있다고 한다. 법제 변화를 지켜보는 해외 기관들로부터 수혜주 문의가 부쩍 늘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방산과 조선 등 성장성이 뚜렷한 업종과 자사주 의무 소각 등 상법 개정 수혜가 예상되는 지주사에 대한 문의가 많다"며 "금융주 중에서는 이미 고평가 우려가 있는 은행주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오른 보험주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장기 투자 자금이 한국 증시로 유입되려면 '꾸준한 정책 개선'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부펀드나 대학기금 같은 초장기 자금은 5년, 10년 흐름을 본다"며 "정책이 테마처럼 소모되지 않고, 시장이 장기 성장 계획을 공유해야 한국에 진짜로 자금이 눌러앉는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캡 인트로 팀 역시 그런 시장을 만드는 과정의 한 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자금을 단기적으로 끌어오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한국 운용사들이 글로벌 기준을 갖추도록 돕고 해외 투자자들에겐 한국 시장의 변화를 꾸준히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민경/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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