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가 A씨는 혹시라도 사업이 잘 안돼 추후 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까 고민한 끝에 자산관리 및 승계 전문가인 K변호사와 상담했습니다. K변호사는 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만큼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꼭 지켜야 하니 그 아파트를 신탁에 넣어두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A씨는 아들 C군을 수익자로 지정하고 아내 B씨를 수탁자로 설정해 아파트를 신탁했습니다. 그리고 신탁을 종료, 변경하거나 신탁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서는 수익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특약을 뒀습니다. 그 후 A씨의 사업이 크게 실패해 많은 채권자에게 시달리는 상황이 됐습니다. 채권자 중 한 명인 X씨는 A씨의 재산을 찾다가 아파트를 신탁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X씨는 이 아파트를 강제 집행하고자 했습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신탁재산은 위탁자(이 사건에서 A씨)의 고유재산과는 독립된 재산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위탁자의 채권자(이 사건에서 X씨)는 신탁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수 없고, 위탁자가 파산하더라도 신탁재산은 파산재단에 귀속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러한 성질을 ‘신탁재산의 독립성’이라고 합니다(신탁법 제22조). 이러한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잘 이용하면 부모의 신용악화와 상관없이 재산을 안전하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사건처럼 아버지가 재산을 신탁하면서 자녀를 수익자로 지정한 후 아버지가 채무초과 상태가 되거나 파산하더라도 신탁재산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아버지가 아들을 수익자로 해 부동산을 신탁했는데, 아버지에게 언제든지 신탁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종료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경우에는 어떨까요? 이런 경우에는 사실상 그 신탁재산이 위탁자의 책임재산이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즉 신탁이 존속하는 동안 위탁자가 언제든지 신탁계약을 종료시키고 신탁계약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위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칠 수 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긍정되는 경우에는 위탁자의 신탁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위탁자의 일반 채권자들에게 공동담보로 제공되는 책임재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17다254891 판결).
그러나 신탁계약상 신탁부동산을 처분하는 데 수익권자의 동의를 받도록 정해진 경우에는 위탁자가 신탁을 종료시키고 위탁자 앞으로 신탁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위탁자의 신탁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실질적으로 재산적 가치가 없어 채권의 공동담보의 역할을 할 수 없으므로 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위탁자의 적극재산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대법원 2021. 6. 10. 선고 2017다254891 판결). 따라서 위 사건처럼 신탁을 종료, 변경하거나 신탁부동산을 처분하려면 수익자의 동의를 얻도록 한 경우에는 신탁부동산 자체는 물론이고, A씨가 신탁 부동산에 대해 가지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도 강제 집행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신탁, 특히 유언대용신탁을 잘 활용하면 부모의 채무초과에도 불구하고 특정 재산을 안전하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다만 채무자가 이미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신탁을 한 경우, 즉 사해신탁(사해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신탁계약이 취소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탁을 활용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고자 할 때는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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