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호텔들이 자존심을 걸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호텔 20여 곳이 잇따라 연말 한정 케이크 컬렉션을 내놓으면서다. 단순한 디저트 판매를 넘어 브랜드 위상을 보여주는 연말 ‘전략 상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18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특급호텔 20여 곳이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전 예약을 일제히 시작했다. 가장 비싼 제품은 30만~50만원대에 달하며, 일부 호텔은 회전목마 오르골, 한옥 문양 등 장식형 케이크를 한정 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다. 이 호텔은 회전목마 장식이 실제로 돌고 캐럴이 나오는 초콜릿 쇼피스를 50개 한정으로 내놨다. 가격은 30만원대 중반에 이른다. 숙련된 파티셰가 48시간 이상 작업해야 완성되는 제품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도 다크 초콜릿과 블랙 트러플 크림을 쌓아 올린 ‘다이아몬드 리프’ 케이크를 30만원에 선보였다.

한국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케이크도 눈에 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은 한옥의 꽃살문과 겨울 풍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엘레강스 한옥’ 케이크를 내놨다. 한지 느낌의 디테일과 나뭇결을 닮은 표면 질감이 특징으로, 잣·피칸 프랄린과 배 콩포트, 초콜릿 가나슈를 층층이 쌓아 풍미를 살렸다. 같은 호텔의 다른 제품은 오래된 나뭇잎 위에 내려앉은 눈을 형상화해 자연스러운 텍스처를 강조했다. 외국인 투숙객에게는 ‘K디저트’로, 국내 고객에게는 ‘한정판 아트피스’로 통한다는 설명이다.
중간 가격대에서는 7만~15만원 선의 케이크가 주류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라즈베리 초콜릿 트리, 피스타치오 오너먼트, 율 로그, 티라미수 등 다섯 가지 케이크로 컬렉션을 구성했다. 워커힐은 눈 내린 마을 풍경을 옮겨놓은 ‘뤼미에르 블랑슈’를, JW 메리어트 계열 호텔들은 선물 상자·포인세티아·레드벨벳 랜턴 등 각기 다른 콘셉트의 케이크를 내놓으며 ‘테이블 위 스토리텔링’을 내세웠다. 가족 단위 소비자들은 딸기 생크림, 티라미수 등 익숙한 맛을 선호하면서도 모양만큼은 호텔 특유의 화려함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가격 부담을 낮춘 ‘합리적 럭셔리’도 포지션을 굳혀 가고 있다.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은 4만2000원부터 시작하는 부쉬 드 노엘, 말차 딸기 케이크 등을 내놨다. 글루텐프리 통나무 케이크를 선보인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7만8만원 선의 케이크를 내세운 카시아 속초 등은 건강과 가성비를 함께 따지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일부 호텔은 사전 예약 시 10~20% 할인과 와인 증정 등 프로모션을 붙여, 대형 프랜차이즈와의 가격 격차를 줄이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호텔 업계가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케이크가 연말에 호텔을 떠올리게 만드는 가장 쉬운 고객 접점이자, 식음료(F&B)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연말에 한 번 호텔 케이크를 경험해 본 소비자가 다음에는 뷔페나 객실 상품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호텔이 보도자료에서 “호텔 케이크 하나면 연말이 완성된다”고 내세우며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수의 소비자가 구매하던 호텔 케이크가 보다 범용적이 된 배경에는 달라진 소비자 입맛도 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시장에선 여전히 대형 제과 프랜차이즈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쯤은 값비싼 케이크를 맛보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호텔이 노리는 시장이 뚜렷이 갈라졌다. 생크림에 생딸기를 얹은 대중적 케이크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에서 사더라도, 연말 가족 모임이나 연인과의 홈파티에는 호텔에서 만든 고급 케이크를 따로 주문하는 패턴이다. SNS 인증 문화가 더해지면서 ‘얼마나 비싸 보이느냐’보다 ‘얼마나 특별해 보이느냐’가 선택 기준이 됐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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