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송년 레퍼토리이자 각 발레단이 '새 얼굴'을 소개하는 무대라는 상징성이 있다. 화려한 군무와 환상적인 서사가 펼쳐지는 작품 속에서 장래의 스타 무용수들이 첫 존재감을 드러내곤 한다. 올해 유니버설발레단의 서울 공연에서는 두 명의 무용수가 발탁됐다. 2020년 입단 이후 차근차근 역할을 넓혀온 발레리나 장지윤(30), 2017년 입단해 드미솔리스트로 활약 중인 이승민(31)이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다음달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클라라’와 ‘호두까기 왕자’로 함께 데뷔한다. 지난 18일 이들을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예기치 못한 캐스팅, 그러나 준비돼 있던 시간들
장지윤은 캐스팅 소식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받았다. "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제 이름을 확인했어요. 그런데 이번엔 주역으로 제 이름이 맨 위에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군무와 솔리스트 역할을 거치며 경험의 폭을 넓혔지만 주역 캐스팅까진 예상을 못했다는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이승민도 마찬가지였다. "호두까기 인형의 자선공연에서는 주역 경험이 있었는데요, 지난해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은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서울 주역 데뷔란 소식을 들었어요."

장지윤은 올해 유난히 바빴다. 발레단 정기공연에서 눈에 띄는 캐스팅을 많이 소화했다. 이승민은 부상에서 복귀해 무대에 서기 위한 연습과 몸관리를 병행하고 있었던 차였다. 새로운 호두까기 인형의 스타가 된 두 사람은 발레단의 응원과 격려 속에서 합을 맞춰가고 있었다.
장지윤은 클라라를 '동심을 선물하는 소녀'로 그리고자 한다. 동화 속에 관객이 잠시 들어갈 수 있게 순수한 정서를 전달하는게 목표라고. 선배 무용수들이 표현한 클라라의 표현을 틈틈이 살펴보면서 자신만의 감성을 빚고 있었다. 이승민은 "왕자는 환상 속의 존재이면서도 관객에게 안정감과 희망을 전하는 인물"이라며 "감동의 서사를 품은 작품 특징을 고려해 따뜻한 위로를 전달하는 왕자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화가 만드는 파트너십
이번 작품은 두 사람의 첫 주역 무대이자 무대 위 첫 만남이기도 하다. 군무에서도 함께 춤춰본 적이 없던 조합이기에 연습실에선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했다. 185cm의 장신인 이승민은 주로 키 큰 발레리나와 춤을 춰왔다. 상대적으로 아담한 장지윤과 춤을 추는 일은 처음에는 낯설었다. 장지윤은 "(이승민과) 불편한 점을 서로 솔직하게 말하고 조율해가면서 가장 잘 맞는 지점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끊임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이 터지는 사이지만 작품에 대한 일상 속 접근 방식은 상반된다. 장지윤은 디테일을 파고드는 연구형. 잘 때까지 무용수들의 영상을 보며 하루종일 발레를 생각한다. 이승민은 일상에서는 발레 생각을 비우며 여백을 만든다.

무용수로서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 두 사람은 '몸 관리'를 꼽았다. 이승민은 "입단한지 9년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려 9년을 오롯이 채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장지윤 역시 주역 데뷔를 앞두고 연습량이 많아져 체력 부담이 크게 늘었다. 그는 "군무에서는 무대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를 틈이 있었지만 주역은 무대에서 쉬지 않고 흐름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이것이 주역으로서 책임감이자 부담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방과 서울로 이어지는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역 외에도 수많은 역할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승민은 호두까기 인형 속 9가지 캐릭터를, 장지윤도 7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중이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 체력 조절이 이번 공연의 중요한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차기작으로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레퍼토리 출연에 대한 희망도 드러냈다. 장지윤은 '지젤'을, 이승민은 '오네긴'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승민은 "감정선과 내적인 밀도를 표현해야 하는 작품이어서 지금보다 더 깊은 내공이 필요하다"고 겸손히 말했다. 그는 이어 부상으로 놓쳤던 올해의 '춘향' 속 변학도 역할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발레단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하면서 두 사람의 발레 사랑은 더욱 견고해졌다. "예전에는 시키면 했던게 춤이었다면, 지금 발레가 가장 재미있는 시기를 맞았어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착인형'같은 존재에요. 오늘의 내가 가장 젊으니까 그 시간들을 발레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요."(이승민) 장지윤은 발레를 '선물받은 기분'에 비유했다. "무대에 한발을 내딛기 전의 긴장을 딛고 무대 위에서 춤추는 행복한 마음이 꼭 선물을 받은 기분 같아요. 그게 저를 춤추게 만들어요."(장지윤)
두 무용수의 준비 과정은 기술을 넘어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가로서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의 호두까기 인형은 오는 12월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사진=문경덕 기자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