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열리는 ‘깃털로 만든 여인’은 작가가 한국에서 처음 진행하는 개인전이다. 아들 인디고를 낳고 기르며 엄마로서 겪은 빛과 어둠, 그리고 버거움을 이번 전시 작품 20여 점에 풀어냈다. 탄생과 돌봄을 둘러싼 심리와 자아의 변화를 솔직하면서도 위트 있게 담아낸 결과물이다.
프랑스계 베트남 혼혈인 작가는 파리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과 플로리다를 오가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주로 손이나 다리, 머리카락 등 여성의 신체에 집중한 작품을 선보인다. 신체 부위는 매우 세밀하게 표현하는 반면, 얼굴의 이목구비는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담한 컬러도 돋보인다. 핑크빛 살색이나 갈색 계열에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등 원색을 사용해 강렬하고 선명한 작업을 소개해왔다.

작가는 초창기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작품과 작업 과정 등을 올리며 본인 스스로를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인스타그램은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아티스트가 지닌 예술의 진정성을 흔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인스타그램이 단순히 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창의성과 연결을 촉진하는 역할도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올린 실험적인 작업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큰 힘이 됐거든요. 이를 통해 다른 예술가나 컬렉터들과 의미 있는 관계도 쌓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즉각적 피드백이 때로는 창작 과정에서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반응이 느리거나 없으면 좌절감을 느끼고, 팔로어를 만족시키려는 유혹이 더 강해지기도 하니까요.”


엄마가 맞이한 세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은 변화를 이야기한다. 작품 전반에 이 주제가 상징적으로 숨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이미지는 펠리컨이다. 펠리컨은 기독교 도상학에서 모성과 자기희생, 부활을 뜻한다.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 펠리컨은 죽어가는 새끼에게 자기의 가슴을 쪼아 흘린 피를 먹여 살리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 펠리컨에 자신의 모습이자, 모성을 지닌 엄마로서의 여성을 투영했다고 전했다.
“제가 사는 플로리다에서는 펠리컨을 흔히 볼 수 있어요. 반들반들 광이 나는 까만 부리와 대비되는 하얗고 부드러운 깃털의 모습이 여성이 엄마가 되면서 겪는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검은색과 흰색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했죠. 또 이렇게 작업하다 보니 엄마가 되고 난 후 저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제가 이번 작품에 사용한 예술의 언어나 효과, 작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여러 형상이 이전보다 심플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모성을 은유한 펠리컨의 모습은 이면화(diptych) 형식의 작품 ‘두 요람(Cradles)’에서 극대화된다. 아이가 누워 있는 유모차 형상의 그림과 유모차 모양과 유사한 펠리컨 입이 그려진 작품을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그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엄마가 된 작가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아이를 돌보느라 작업에 할애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작가는 작품의 크기나 표현 방법에서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주로 작은 사이즈의 종이 위에 작업을 하고, 블랙 앤 화이트로 색도 심플해졌다. 이 같은 작가의 변화를 확연하게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은 전시장 안쪽에 자리한다. 36.3㎡(11평) 남짓한 공간에 흑백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세계가 펼쳐진다. 손톱에는 기다란 네일 아트 대신 반찬이 되기를 기다리는 길쭉한 물고기들이 붙어 있고, 로맨틱한 레이스 디자인은 스커트나 속옷이 아닌 아이를 위한 젖병과 유모차에 치장돼 있다. 작가는 종이 위에 불투명한 수채화물감(구아슈)를 사용해 엄마가 일상에서 만나는 장면과 환상적 분위기를 교차해 담아냈다.
재치 있게 풀어낸 잠들지 못하는 나날
아이가 잠들지 않으면 엄마의 하루는 밤낮을 모르고 계속된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는 어둠이 깔린 저녁이나 밤, 새벽이 연상된다. 작품 ‘밤의 방문자(Nocturnal Visitor)’에는 휘영청 달이 뜬 새벽녘, 창문 너머로 펠리컨인지 환상 속 새인지 구분되지 않는 새가 등장한다. 마트료시카처럼 어머니에게서 또 다른 어머니가 태어나는 듯 3명의 여인이 포개져 있는 ‘에코(Echo)’ 역시 램프 하나에 의지한 어두운 방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한 명의 여성이지만 그 여성 안에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고, 그중 하나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모피코트로 한껏 치장했지만 손에는 쓰레기 봉지를 든 모습으로 원초적 동물의 가죽과 일상 속 가사 노동 등을 대비해 내면의 긴장과 대비 등을 표현한 ‘대청소(Spring Cleaning)’ 역시 불을 밝히는 조명으로 시점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집 내부에서도 문을 잠그는 프랑스의 잠금장치가 한국인에게는 마치 집에 갇힌 듯한 이미지로 비치는 점이 재밌다. 작가의 위트 있는 표현은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수유용 브래지어를 착용한 여성의 속옷이 벗겨져 한쪽 가슴이 그대로 노출된 이 작품은 엄마가 되기 이전의 자아와 이후의 자아를 대립시켰다. “아기가 탄생하려면 성관계를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데,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이를 별개로 대하고 어색해하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기 전 에로틱하고 섹슈얼한 자아와 아이를 낳은 후의 모습에 유머를 더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조각 작품도 소개된다. 막대사탕이나 공갈 젖꼭지 등 육아용품을 실제보다 과도하게 크게 표현했는데, 이는 말린 박을 활용한 것이다. 둥근 형태와 다산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박을 소재로 했으며, 한국에서 진행하는 전시인 만큼, 아시아의 전통 기법과 유사하게 천연 옻을 사용해 조각의 표면을 칠했다고.

단순함, 독창적 어휘가 되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만큼, 작가의 작업 역시 초반에는 여러 평가를 받았다. 너무 일러스트 같아 깊이가 없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선과 색의 배치가 단순하고 평면화된 작가의 작품은 언뜻 보면 디자인 툴로 만든 그래픽 같기도 하다.
“제 작업은 처음부터 그래픽적 요소가 강했습니다. 오랫동안 애니메이션과 그래픽 노블을 비롯한 대중문화에 매료돼 있었고, 그 언어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사실 저는 회화적 특성이 뚜렷한 화가painterly painter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그러다 진정한 창작을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여유를 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어느 순간부터는 세밀한 묘사와 평면적 질감, 정교한 구성 등 제 작업의 고유한 특성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저만의 독창적 언어가 됐죠.”

작가는 자신을 회화적인 화가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면 세밀한 회화적 표현이 엿보인다. 머리카락과 팔뚝, 손 등에서는 세필을 활용한 정교한 디테일이 두드러진다.
“저는 보통 인물이나 사물을 단순화하려고 해요.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이상화된 표현을 추구하죠. 그래서 몸통 같은 일부 부위는 더 부드럽고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반면 팔뚝이나 손은 좀 더 정밀하게 그려요. 아마도 손은 신체에서 매우 활동적인 부분이고, 그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일 거예요. 손은 능동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몸통은 상대적으로 수동적이죠. 이렇게 부위에 따라 표현을 달리하는 방식은 관객의 시선을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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