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스티븐 허프(64·사진)는 ‘클래식 음반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그라모폰상을 여덟 차례나 수상한 명피아니스트다. 현재까지 60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한 피아니스트인 만큼 한평생 연주에만 빠져 살았을 것이라고 넘겨짚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허프는 40곡 이상의 작품을 써낸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개인전을 연 화가, 소설과 에세이를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이처럼 다재다능한 음악가인 허프가 한국을 찾는다. 오는 22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어제의 세계’(The World of Yesterday)를 아시아 초연하기 위해서다. 19일 서울 홍은동 심포니 송 지휘자실에서 만난 허프는 “모차르트,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등 역사적으로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악상을 표현하고 기량을 드러내기 위해 피아노 협주곡을 직접 만들어 연주해 왔다”며 “무대 위에서 긴밀한 감정적 교류가 일어나고, 청중에겐 음악의 여운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강렬한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프는 협주곡에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빈의 문화와 낭만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담았다.
그에게 작곡과 연주 중 더 까다로운 일은 무엇일까. 허프는 “작곡은 고통스러워도 일단 악보를 출판사에 넘기면 끝이란 생각이 들지만, 연주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는 게 차이점”이라며 “피아니스트는 어젯밤 공연을 아무리 성공적으로 마쳐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선 꼭 연습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자작곡인 피아노 독주곡 ‘팡파르 토카타(Fanfare Toccata)’는 국내에서도 친숙하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위해 작곡한 작품으로, 당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이 곡을 연주했다. 그해 심사위원이었던 허프는 한국에서 눈여겨보는 피아니스트로 가장 먼저 임윤찬을 꼽았다. 그는 “빅스타인 임윤찬이 견뎌야 하는 스트레스와 압박은 엄청날 것”이라며 자신도 콩쿠르 우승 직후 탈진해 9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는 경험담을 공유했다. 이어 “임윤찬에게 ‘젊을 때 실패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마음껏 실수해 봐야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허프는 “미래엔 한국이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선 클래식 음악이 옛날 문화로 여겨지면서 위기에 처해 있지만, 한국 클래식계는 굉장히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50년 후엔 전 세계 학생들이 한국에 클래식 음악을 배우러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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