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증시 ‘홀짝 징크스’가 올해도 통했다. 짝수해에는 주춤했던 증시가 홀수해에는 활황을 보였던 사이클이 2025년에도 재현된 것이다. 2024년 9.63% 하락했던 코스피는 올해 들어 11월 19일까지 64% 뛰었다.
전문가들은 급등 이후 조정 장세가 펼쳐지면서 홀수해와 짝수해의 증시 성적표가 갈렸다고 분석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센터장은 “홀짝의 인과성보다는 증시가 급등하는 시기에는 투자자들의 기대치가 기업의 실적이나 정책과 합쳐져 선반영됐다가 강력한 강세장 이후에는 쉬어가는 구간이 펼쳐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년 전망은 엇갈린다. 한국 기업의 근원 경쟁력이 회복되고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있었던 만큼 ‘짝수해 징크스’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과 올해 급등한 만큼 어느 정도의 조정은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2000년 이후 ‘홀수해에 증시가 오른다’는 공식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2000년 이후 13번의 홀수해 중 증시가 하락한 해는 2011년(-10.98%)뿐이었다. 13번 중 7번은 코스피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급등했다. 상승한 홀수해 중 2005년(+53.96%), 2007년(+32.25%), 2023년(+18.73%)은 금리인상 사이클이었음에도 증시는 가파르게 올랐다. 통상 금리인상기에는 이자가 높아지는 만큼 기업이나 개인의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 투자 매력이 떨어져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산업 성장 기대감과 함께 투자심리가 살아나며 가계의 돈이 증시로 몰렸다.
반면 짝수해는 13번 중 7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밀레니엄 첫해인 2000년 한국 증시는 사상 유례없는 폭락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코스피는 연간 -50.9%, 코스닥은 무려 -79.5%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닷컴버블이 터지자 세계적으로 미국 나스닥(-38.2%), 일본 닛케이(-29.1%), 대만 가권지수(-43.1%) 등 기술주 중심 증시가 모두 하락했고 구조적 취약성이 겹친 한국 증시의 낙폭은 더 컸다.
2001년에는 37.47% 뛰며 반등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6.50%에서 1.75%까지 11차례 인하하며 글로벌 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한 영향이었다. 한국 증시는 외국인 매수세와 반도체 가격 전망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랠리를 이어갔다.
2003년은 카드사태로 내수경기가 얼어붙자 개인과 기관의 매도장세가 펼쳐졌다. 하지만 외국인이 증시 반등을 주도하며 코스피는 510선에서 800선까지 끌어올려졌다. 거래소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0.4%에 달했고 언론에서는 ‘외인천하’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2005년에는 ‘펀드 열풍’이 불면서 개인 자금이 쏠려들어갔다. 2004년 말 8조원대에 머물렀던 주식형 펀드 설정 규모는 이듬해 25조원까지 증가했고 주식형 편드 계좌 수는 100만 개에서 526만 개로 급증했다. 평균 수익률은 55%를 기록하며 예금과 아파트 상승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증시로 돈이 몰리자 코스피는 53.96% 뛰며 한 해를 마감했다.
2007년에는 외국인 순매도에도 개인과 펀드 자금 유입이 확대되고 중국의 경제 성장기와 맞물려 기업 실적이 높아지면서 조선·철강·기계·화학 종목이 급등했다. 코스피는 사상 처음 2000 시대를 열었고 1년 동안 최고치를 51차례나 새로 썼다.
개인의 펀드 가입이 급증하면서 언론에서는 ‘1가구 1펀드’ 시대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코스피는 10월 892.16까지 급락했고 연간 40.73%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유가는 연초 90달러에서 6~7월 150달러까지 치솟으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웠고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시장 변동성이 극심했다.
그러자 이듬해인 2009년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사상 초유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돈이 풀리자 글로벌 증시는 동반상승하며 ‘홀수해의 마법’이 재현됐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86.7%)와 현대차(206.3%) 등 수출 중심 종목이 급등하며 코스피가 50% 가까이 뛰었다. 이듬해인 2010년에도 코스피가 21.88% 상승세를 이어가며 2년 연속 상승장이 펼쳐졌다.
2010년 짝수해 징크스가 깨지자 2011년 홀수해의 법칙도 사라졌다. 한국 증시는 외부 충격과 금융 불안이 겹치면서 코스피가 연간 ?–10.98% 하락하는 고전의 한 해를 보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이 증시 흐름을 좌우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리스부터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했고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하며 시장 불안은 증폭됐다.
기업 실적과 경기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이 더욱 부담으로 작용했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 특성상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기업 실적 악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코스피가 다시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펼쳐진 영향이다. 삼성전자(41.4%), SK하이닉스(71.1%)가 급등했고 주식거래 활동계좌는 2477만 개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경제활동인구 대비 90%가 주식 거래에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짝수해의 저주를 피했다. 증시에 ‘코로나 버블’이 형성되면서 비대면 산업이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BBIG7 종목의 평균 영업이익 증가율은 74%에 달하고 PER 60배, PBR 6배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22년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중국발 공급과잉과 성장 둔화가 겹치며 버블은 빠르게 꺼졌다.
2023년에는 코스피가 10월 연저점 2200선까지 밀렸다가 12월 연준 금리인하 시사로 급반등하며 18.73% 뛰었다. 코스닥은 27.6% 상승했다. 에코프로 3형제를 필두로하는 2차전지주 중심 개인 투자 열기가 시장을 달궜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38.69%, 86.18% 올랐다.
2024년 글로벌 증시가 인공지능(AI)이라는 호재를 타고 급등할 때 코스피는 혼자 죽을 쒔다. 2024년 하락장은 계엄사태와 미국 대선 등 대내외적인 정치 리스크에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이 하락하고 거버넌스 혁신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한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 대부분은 이익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고질병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훼손하는 쪼개기 상장, 성장보다 상장에만 관심 있는 IPO 버블은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을 목표로 증시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코스피 대장주와 방산, 조선주 등이 급등하면서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센터장은 “과거 한국 산업은 구조적으로 성장하는 축이 뚜렷하지 않아 주가 변동성이 컸다”며 “반도체 등 수출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 경기 사이클이 짧게 돌았고 주가는 실적보다 앞서 과열됐다가 이후 다시 반토막 나는 패턴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6년에는 짝수해 징크스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센터장은 “AI 시대에 접어들며 수요가 폭발하고 구형 반도체와 차세대 반도체 가격이 모두 급등하며 산업의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고 조선, 방산, 원전 등 새로운 성장축이 증시 변동성을 낮추고 있는 만큼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단기 사이클에 갇혀 있지 않고 구조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반면 내년 글로벌 증시가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성과 별개로 증시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김학균 센터장은 “미국이 2023년부터 3년 연속 굴곡 없는 강력한 강세장을 이어온 만큼 4년 차에는 쉬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증시는 PBR 1.2배로 여전히 가장 저렴한 시장 중 하나지만 글로벌 증시가 삐그덕 거린다면 내년에는 상승 탄력이 둔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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