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일(현지시간)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반도의 브레스트 해안 절벽 위 탈레스 해양방위센터 실험동. 노란색 장비 한 대가 레일을 타고 수조 아래로 천천히 잠수하자 일 분도 채 안돼 모니터에 표적 반사 신호를 의미하는 붉은 점이 찍혔다. 물속으로 사라진 이 3m 크기 장비는 수십㎞ 떨어진 잠수함의 미세한 진동까지 찾아내는 탈레스의 장거리 저주파 예인 소나(음향탐지기) ‘캡타스(CAPTAS)’다.
저주파 대역은 수중에서 멀리까지 도달하지만 수온층·난반사·잡음으로 신호가 심하게 왜곡돼 해석 난도가 가장 높은 영역으로 꼽힌다. 탈레스는 이 난제를 인공지능(AI) 기반 신호학습·잡음 제거·표적 예측 알고리즘으로 해결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해군이 가장 널리 운용하는 장거리 저주파 예인 소나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브레스트에선 이 기술을 기반으로 영국과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의 ‘자율 해상 기뢰대응체계(MMCM)’도 준비 중이다. 무인수상정(USV)이 캡타스 소나로 해저를 스캔해 기뢰 의심 신호를 포착하면, AI 애플리케이션이 이를 실시간 판독해 ‘탐지?분석?공유?제거’가 하나의 회로처럼 이어지는 자율 체계 구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프랑스가 ‘전시경제’를 선언하며 AI 기반 센서·통신·자율 플랫폼을 통합하려는 전략이 해양 전장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브레스트는 프랑스 해군의 ‘눈’과 ‘귀’를 동시에 길러내는 도시다. 1963년부터 탈레스가 터를 잡은 이곳은 프랑스 해상 방위의 심장부이자 군(軍)과 산업이 맞물린 거대한 실험장이다. 해저 탐지용 소나와 전자전(EW) 장비, 전술 통신망, 사이버 방위 시스템까지 해양작전의 모든 기술이 이곳에서 태어난다. 에마뉘엘 미쇼 탈레스 잠수함·수상함 담당 부사장은 “우리가 만드는 것은 단순 무인 장비가 아닌 스스로 감지하고 판단하는 전장의 ‘신경망’”이라며 “각 센서를 하나의 지능형 체계로 통합해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작동하는 방위 플랫폼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탈레스는 이 기술들을 AI 기반 통합 플랫폼으로 묶어 하나의 ‘해상 전장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드론·AI·극초음속 미사일 등 새로운 비대칭 전력이 전장을 재편하면서 현대전의 승패는 데이터의 정확성과 처리 속도로 결정된다는 판단에서다. 미쇼 부사장은 “오늘날의 고강도 전쟁은 누가 더 빨리 보고, 더 정확히 해석하느냐의 싸움이 됐다”면서 “소나·레이더·전술통신·전자전 장비가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비로소 ‘정보 우위(information superiority)’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새로운 전장의 결정적 무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브레스트에서 생산되고 있는 캡타스(CAPTAS) 예인 소나는 그 대표적 성과다. AI를 본격 적용한 이 장비는 최대 60㎞ 떨어진 잠수함까지 탐지하며 360도 전방위 커버리지를 제공한다. 나토 대잠전의 핵심 장비로 꼽혀 17개국 해군이 도입했고, 최근 5년 새 생산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점점 더 은밀해지는 최신 잠수함을 잡아내기 위해 AI가 소나의 감지 신호를 학습하고, 수중 잡음을 걸러내며 표적의 움직임을 스스로 예측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탈레스는 캡타스 소나를 중심으로 수중 센서망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네트워크 센싱’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헬기·초계기·USV에서 투하되는 소노부이와 능·수동 겸용 소노플래시(SonoFlash)가 해역 전반의 음향 데이터를 촘촘히 수집하면, CAPTAS가 장거리·저주파 대역에서 잠수함 흔적을 끌어 올려 신호의 골격을 만든다. 하나의 함정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센서들이 ‘집단 지능’으로 전장을 지배하는 구조다.
탈레스가 브레스트에서 수중의 ‘눈과 귀’를 만들었다면, 프랑스 남서쪽 리무르에서는 전장을 지휘하는 ‘두뇌’를 만든다. 브레스트에서 수집된 해저 음향·기뢰·잠수함 정보가 리무르에서는 레이더·지휘통제·미사일 체계로 연결되며, 프랑스가 추진하는 ‘AI 기반 전장 네트워크’의 상층부를 구성한다. 지상·공중·우주까지 이어지는 다층(多層) 감시·방공 체계의 중심축인 셈이다.리무르 레이더 공장은 전시경제 체제 선언 이후 가장 먼저 확장된 방산 생산기지다. 탈레스는 2022~2024년 사이 레이더 생산라인을 세 배로 늘려 연간 30대 생산이 가능한 체제를 갖췄다. 기존 프랑스식 절차주의 대신 국방부(DGA)와 유럽공동군비기구(OCCAR)가 직접 생산 속도를 끌어올린 것으로, ‘방공 능력의 조기 확보’를 최우선 전략 과제로 규정한 결과다.
최근 공장 인수시험(FAT)을 통과하며 양산이 공식화된 ‘그라운드 파이어(Ground Fire) 300’은 프랑스·이탈리아 합작의 차세대 중장거리 방공체계 SAMP/T NG(일명 ‘유럽판 패트리엇’)의 핵심 센서다. 기존 아라벨(Arabel) 레이더를 대체해 성능을 극대화한 장비로, 400㎞ 감시 범위·360도 전방위·90도 고도 커버리지를 갖췄다. 탈레스 관계자는 “드론·순항미사일·탄도미사일까지 표적 정보를 1초마다 갱신해 빠르게 기동하는 위협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탈레스는 그라운드 파이어 300을 중심으로 장거리 조기경보용 그라운드마스터(GM) 400, 전술 부대 방공용 GM200을 연동해 “단거리?중거리?장거리” 레이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전장이 요구하는 거리·고도·속도별 위협을 AI로 자동 분류해 상호 보완하며 작동하는 방식이다. 탈레스 관계자는 “리무르 공장은 ‘유럽판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SAMP-T NG의 두뇌이자, 유럽 방공망 전체를 하나로 묶는 핵심 노드가 될 것”이라며 “프랑스는 수중?지상?공중?우주까지 이어지는 다층 센서를 AI 기반으로 통합해 전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재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스트·리무르=안정훈 기자

브레스트·리무르=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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