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반경 24㎞ 내에서 확보한 재료로 만든 ‘美 정통 가정식’
새크라멘토 시내에서 차로 20분, 도시의 소음이 잦아들 때쯤이면 작은 마을 딕슨이 눈에 들어온다. 19세기에 그대로 머문 듯, 농부들의 목가적 삶이 고스란히 재현된 공간이다. 해바라기 줄기가 드리워진 정문을 지나면 오리와 닭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드넓은 홉 밭이 펼쳐진다. 그 옆엔 갓 딴 홉을 맥주로 탄생시키는 양조 설비가 자리잡고 있다. 프랭크 루스탈러 대위의 이름을 딴 루스탈러농장 풍경이다.이곳의 수석양조가인 타일러 웨이는 “보통 로컬 맥주는 그 지역에서 양조했다는 뜻이고 재료까지 지역에서 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루스탈러농장은 재료까지 이 땅에서 난 것을 쓴다”고 강조했다. 맥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물과 맥아(몰트), 홉, 효모 네 가지다. 루스탈러농장은 홉뿐만 아니라 맥아도 수㎞ 이내 우드랜드나 데이비스 지역에서 조달한다.
엄격한 규칙이나 정해진 동선은 이곳에 없다. 방문객은 맥주 한 잔을 들고 과수원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고 오래된 트랙터와 홉 수확기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2. 특산물 라즈베리·호두, 초콜릿과 달콤한 만남
‘초콜릿의 여왕’ 진저 엘리자베스의 젊은 시절은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자아도취 프로젝트’의 시간이었다. 세계 3대 요리 학교인 컬리너리인스티튜트오브아메리카(CIA)에서 기본기를 닦았고 미국 초콜릿의 대부로 불리는 자크 토레스, 시카고 리츠칼튼호텔 마스터 쇼콜라티에 엔밍슈 밑에서 실력을 쌓았다. 엘리자베스가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귀향한 이유는 “수많은 농장이 있는 풍요의 땅”을 찾기 위해서다.엘리자베스가 자기 삶의 궤적을 설명하는 동안 첫 번째 디저트가 준비됐다. 에콰도르 아마존산 카카오가 75% 함유된 프랑스식 전통 초콜릿 팔레도르다. 순수한 가나슈로 만들어진 것과 라즈베리가 들어간 것이 한 점씩 올려졌다. 엘리자베스는 “매년 인근 새턴농장 길거리에 차를 대고 마약 거래를 하듯 라즈베리를 가져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곧이어 호두를 넣은 초콜릿이 테이블에 올랐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이 초콜릿에는 다양한 요리 기술이 집대성됐다. 호두를 넣은 스코틀랜드 전통 비스킷 쇼트브레드를 먼저 굽고, 볶은 호두를 캐러멜화한 설탕으로 감싼 프랄린을 준비한다. 이 둘을 섞어 간 뒤 초콜릿과 코코아 버터로 감싸 굳히면 완성이다. 엘리자베스는 “지역에 넘쳐나는 호두를 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3. 농장 풍경을 벗삼아…갓 딴 홉으로 빚은 맥주로 ‘건배’
새크라멘토 19번가에 있는 고풍스러운 빨간 벽돌 건물 앞에는 ‘B&L’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에 나오는 은행 베일리빌딩&론에서 이름을 따온 이 건물은 2004년 전까지 소방서로 쓰였다. 이제는 불 대신 사람들의 허기를 꺼주는 이곳은 ‘새크라멘토 팜 투 포크 운동’의 대부 패트릭 멀베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멀베니스B&L이다.멀베니스B&L의 요리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재료의 본질에 집중하는 미국 가정식을 추구한다. 가정식 샐러드, 훈제 연어와 아이리시 브레드, 치미추리(아르헨티나식 소스)를 곁들인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 등이다. 평범한 메뉴에 ‘차별화’ 한 스푼을 더할 수 있는 것은 원산지 덕분이다.
뉴욕 출신 멀베니가 1991년 새크라멘토에 정착한 이유는 단순했다. 농산물의 풍요로움 때문이었다. 그는 “새크라멘토는 1년 내내 무언가 수확되는 축복받은 땅”이라며 이 도시를 ‘미국 팜 투 포크 수도’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새크라멘토의 명물 ‘타워브리지 디너’ 역시 그의 기획과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멀베니의 주방은 반경 24㎞ 내에서 식재료를 확보한다는 보이지 않는 원칙을 고수한다. 요리는 현지 재배 계절에 맞춰 매일 바꾼다.
4. 테이블은 단 4개…작은 식당서 맛보는 ‘카프레제 샌드위치’
미국 요리 연구가 줄리아 차일드는 “신선한 재료로 좋은 음식을 요리하라”고 했다. 새크라멘토 시내에 있는 테이블 4개짜리 작은 음식점 세카힐스 테이스팅룸에 딱 맞는 말이다. 이곳의 최고 별미는 토마토 카프레제 샌드위치다. 샌드위치를 한 입 물면 과육이 꽉 찬 토마토의 상큼한 맛이 입 안에 퍼지고 곧이어 모차렐라 치즈의 쫀득한 식감이 혀에서 느껴진다. 세카힐스 테이스팅룸은 인근 세카힐스 과수원에서 생산하는 올리브유와 와인, 견과류 등의 재료를 맛볼 수 있도록 마련된 일종의 전시장이다.세카힐스의 농부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요차 데헤 부족이다. 이들은 2011년 처음으로 올리브를 수확했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짐 에터스 토지관리이사는 “처음에는 밀, 해바라기를 재배하며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했는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토지를 확장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요차 데헤 부족은 101㎢ 규모 과수원을 묵묵히 일군다. “땅을 돌보면 땅이 당신을 돌본다”는 부족의 오래된 믿음을 가슴에 품은 채.
새크라멘토=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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