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그마한 여행사를 17년 동안 운영한 김기현 지오그리드 대표(50)가 친환경 정수 플랜트 사업으로 업을 바꾼 계기는 2020년 터진 코로나19였다. 막혀버린 ‘하늘길’ 앞에서 여행사 대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행사를 접고 경희대 AI(인공지능)비즈니스 석사 과정에 입학한 김 대표의 목표는 단 하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는 것이었다. 정부지원과제를 100여 개 수행하면서 그가 찾은 답은 물 관련 산업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든, 대지진이 나든, 물을 찾는 수요엔 변함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김 대표는 “물 관련 산업은 경쟁 강도에 비해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대기업에 맞서 생수 사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생활용수를 깨끗하게 정수해 재활용하는 기술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3년을 들여 이온화 기술로 배관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제거·살균하는 ‘블로스’를 개발했다. 건물 내 수도배관이 시작되는 곳에 설치하면 한 번 쓴 물을 재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24시간 수질 모니터링도 가능한 제품이다.
하지만 여행사 대표 출신이 개발한 스타트업 제품을 써줄 곳은 세상에 없었다. 구원의 손길은 내민 곳은 삼성이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유망 스타트업이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돕기 위해 출범시킨 ‘C랩 아웃사이드’에 도전해 지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자 지오그리드를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삼성은 단순히 지원금 1억원만 준 게 아니라 체계적인 컨설팅을 통해 사업 방향을 가다듬고 매력적인 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렇게 완성된 지오그리드의 솔루션은 지난달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입성했다. 삼성은 지오그리드 덕분에 그동안 흘려보냈던 지하수를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삼성이 인정한 기술력’이란 훈장이 C랩 프로그램으로 얻는 최대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삼성에 서비스를 시작하자 다른 기업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오그리드는 최근 초·중·고교 급식실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에코프로파트너스와 투자 계약을 논의 중이다.
삼성의 지원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은 지오그리드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20일 서울 양재동 R&D캠퍼스에서 C랩 아웃사이드 7기 스타트업 30여 곳의 성과를 공유하는 데모데이를 열었다. 맞춤식을 시간당 300그릇까지 만들어내는 조리 로봇을 개발한 ‘로닉’, 사진 한 장으로 반려동물 질환을 진단하는 ‘십일리터’, 생성형 AI 기반 고화질 미디어 아트를 생성하는 ‘커즈’ 등이 참가했다.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은 “C랩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함께 미래를 개척하는 동반자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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