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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시인들’의 숨은 이야기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입력 2025-11-21 01:30   수정 2025-11-21 09:02

조금새끼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을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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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애잔하지요?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시입니다.

‘조금’이란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를 이르는 말입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작은 시기인데 대개 매월 음력 7, 8일과 22, 23일 무렵입니다. 달-지구-태양이 직각을 이루는 이 때 조류가 느리고 바닷물이 얕아지기 때문에 물고기 활동량도 줄어들지요.

그래서 뱃사람들이 바다로 나가지 않고 모처럼 집에서 쉬는 때이기도 합니다. 김선태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가 조금 물때이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이들을 일컬어 “조금새끼”라 했다는데,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이 아비를 이어 풍랑과 싸우다 “한꺼번에 바다에 묻”히기도 한다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시인은 이 이야기를 온금동에 살던 소설가 김시일 씨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가슴이 아리던지 그곳을 자주 들락거리다가 그들의 삶에 빠져들었고, 그들의 이야기에 시적 상상력을 더해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은 언덕배기 달동네. 온금동(溫錦洞)은 우리말로 ‘다순구미’입니다. ‘다순’은 ‘따숩다’라는 뜻이고 ‘구미’란 바닷가나 강가의 곶이 후미지게 깊숙이 들어간 곳을 말합니다.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이 갯가 동네는 원래 목포 토박이가 아니라 주변에 점점이 흩어진 섬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러고 보니 목포는 진도와 완도 신안 같은 섬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영산강 물길을 따라 하류 쪽으로 흘러온 사람들을 두루 품고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김선태 시인도 고향은 청자골 강진이지만 거의 평생을 ‘목포 시인’으로 지냈습니다. 그 덕분에 이토록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가난과 “서럽도록 아름다운” 비애를 시로 그려낼 수 있었겠지요. “내 속에 파란만장의 바다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썰물이 지네”로 시작해서 “내 속에 파란만장 바다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물이 드네”로 끝나는 그의 시 ‘내 속에 파란만장’도 이런 삶의 물굽이에서 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중견 시인 7명의 일곱 빛깔 이야기



엊그제 나온 특별한 시선집 『영산강 시인들』(엠엔북스 펴냄)에 김선태 시인의 ‘조금새끼’와 ‘내 속에 파란만장’을 포함한 시 10편이 들어 있습니다. 이 시선집에는 고재종, 나종영, 나해철, 박관서, 이지담, 최기종 시인의 시도 10편씩 묶여 있습니다. 영산강 유역(流域)에 사는 일곱 시인의 자선 대표작 70편을 한 데 엮은 것이지요.

책장을 넘기다 보니 중견 시인 7명의 일곱 빛깔 이야기가 강물 위에 반짝이는 물무늬처럼 잘 어우러집니다. 이들의 유려한 말맛과 운율, 유장한 서사와 서정이 아름답고 애틋한 유역의 담론과 함께 펼쳐집니다.

영산강 상류 담양에 사는 고재종 시인은 강에 비치는 햇빛과 바람, 나무와 물새, 스스로 빛을 내며 사라지는 것들의 잔향을 특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합니다.

나종영 시인은 “햇볕 쟁쟁한 날 강가에 홑청을 빨아 널던 젊은 어머니” 같은 ‘영산강’의 기억과 그리움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나해철 시인은 강변의 가난과 애환을 오감으로 되살리며 삶의 근본을 돌아보게 합니다.

박관서 시인은 영산강 중류 몽탄에서 펼쳐진 역사와 전설을 오늘에 비추고, 이지담 시인은 영산강의 격류와 재난의 상흔을 아프게 보듬습니다.

최기종 시인은 홍어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반추합니다.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 빚어낸 홍어는 삭아서 더 생생한 맛으로 삶과 죽음의 잔칫상 앞에 우리를 불러 모읍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북콘서트가 오는 28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새문안로3길7) 지하 강당에서 열립니다. 오봉옥 시인이 사회를 맡고, 7명의 시인이 참가해 ‘강 따라 흐르는 일곱 매듭 시의 기억’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그날이 음력으로 9일이니 ‘조금’ 바로 뒷날이군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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