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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레만과 빈필의 역대급 명연"… 20초 침묵으로 최고의 찬사를 보낸 관객

입력 2025-11-21 15:16   수정 2025-11-21 15:40



교향악 콘서트에서 연주가 끝난 뒤의 침묵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또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통상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이나 말러의 ‘교향곡 제9번’처럼 음악이 조용히 침잠하며 마무리된 경우에는 객석에서 곧바로 박수가 나오지 않고 한 동안 침묵이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물론 연주가 충분히 좋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그런 침묵이야말로 연주에 대한 깊은 공감의 표시이자 연주자들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난 11월 20일 목요일 저녁,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 필) 내한공연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5번’ 연주가 끝난 직후에 빚어진 침묵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드레스덴 아멘’ 풍의 주제에 기초한 종교적 코랄이 웅대하게 부풀어 올라 가슴 벅찬 절정에 도달한 상태에서 더없이 장엄하고 단호하게 끝맺기 때문이다. 여느 때라면 곧바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와야 할 상황! 그러나 이 날은 마지막 음의 여운이 잦아들고 나서도 20초 이상의 침묵이 뒤따랐다. 그 표면적 이유는 지휘자가 동작을 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 날 연주에는 그처럼 얼마간 강제된 침묵을 정당화시키고도 남을 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 무언가는 명연이 유발한 극도의 순음악적 희열이었을 수도, 종교적 황홀경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날의 관객들은 압도적인 예술적 경험을 했고, 그런 경험을 안겨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빈 필하모닉 단원들, 그리고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에게 각별한 찬탄과 경의를 보내야 했다.

명연의 탄생은 공연 전부터 예고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틸레만과 빈 필은 2019년에도 함께 내한하여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8번’으로 놀라운 명연을 들려준 바 있다. 덕분에 올해 내한공연 프로그램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또 한 번 훌륭한 브루크너 연주를 듣게 되리란 예상과 기대를 품었다.

다만 둘째 날 프로그램이 ‘브루크너 5번’ 단 한 곡이라는 점은 기대와 동시에 우려도 야기했다. 장황하고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브루크너의 교향곡들 중에서도 ‘제5번’은 연주하기에도 감상하기에도 가장 까다로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휘자가 크리스티안 틸레만이라는 사실은 우려보다 기대 쪽에 방점을 찍게 했다. 틸레만이 누구던가? 현존 최고의 바그너, 브루크너, R.슈트라우스 전문가이자 콧대 높은 빈 필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휘자가 아니던가! 게다가 ‘브루크너 5번’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온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틸레만은 이 난곡을 능수능란하게 풀어나갔다. 첫 악장 도입부에서부터 확신에 찬 비팅이 돋보였고, 모든 악장에서 주제들의 조형과 연결, 전개는 꼼꼼하면서도 매끄럽고 주도면밀했다. 특히 2악장 주제부의 폴리리듬적 묘미와 3악장 랜틀러의 흥취가 절묘하게 살아났고, 4악장 발전부의 이중 푸가에서는 특유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빌드업이 최고조에 달했다. 브루크너 고유의 게네랄파우제(모두 쉼표)를 강조하지 않는 점, 자의적인 템포 운용 등 그의 독자적 해석 방식에는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있겠으나, 세밀한 필치와 거시적 조망을 아우른 그 해석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았고, 거기에 실연이기에 가능했을 모험의 스릴이 더해졌다. 4악장 재현부 이후의 브레이크를 떼버린 듯 호쾌한 드라이브는 다소 과도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이전까지의 빌드업 과정이 워낙 탄탄했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필휘지의 흐름 끝에는 앞서 언급한 압도적인 대단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의 해석은 빈 필 단원들의 수준 높은 기량과 음악성, 그리고 예의 ‘황금빛 사운드’와 함께했기에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빈 필은 전반 두 악장에서 기술적 실수도 더러 범했으나 사소한 수준에 머물렀고, 그보다는 그들의 빼어난 연주력과 사운드에 감탄 내지 감동하게 되는 장면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어, 2악장의 칸타빌레 주제에서 현악부는 별다른 연출 없이도 그윽한 감흥을 자아냈고, 후반 두 악장의 랜틀러풍 악구들에서는 오스트리아의 풍경과 정취를 환기했다. 솔로 중에서는 음악적 자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두 악기, 호른 수석과 오보에 수석의 겸허하고 자연스러운 연주가 시종 마음을 건드렸고, 금관부의 견실한 합주와 독특한 음색은 브루크너 음악 고유의 종교성과 초월적 색채를 더욱 인상적으로 부각했다.

이번 공연은 ‘오스트리아 대표 악단’ 빈 필이 가진 자부심과 사명감, 그리고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 틸레만의 노련한 해석과 작품에 대한 진심이 맞물려 빚어낸 최고의 연주로 막을 내렸다. 아마도 역대 빈 필 내한공연 중에서도 특필할 명연으로 오래도록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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