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과 장애인 등에 대한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제3자가 이런 정황을 녹음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수교사의 주호민 작가 자녀 학대 혐의 사건을 계기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학대 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 대한 예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 법 개정 논의로 이어졌다. 반면 교원단체들은 과도한 아동학대 신고로 고통받는 교사들을 '학대 가해자'로 몰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21일 정치권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 의원 18명과 함께 아동학대처벌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4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학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의심할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제3자의 대화 녹음을 허용하고 녹음한 내용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골자다. 학대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가족 등의 제3자가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내용은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없다. 주 작가 부부가 지난 2023년 7월 자폐성 장애가 있는 9세 아들의 학대 정황을 발견해 초등학교 특수교사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2심에서 무죄 선고가 난 것도 계기가 됐다. 주 작가의 배우자는 아들과 특수교사와의 대화 녹음을 통해 학대 정황을 발견했는데,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학대 증거로 제출된 녹음파일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어려운 아동과 노인, 중증장애인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 이런 움직임에 교원단체들이 일제히 반대 성명을 내고 비판에 나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고민 없이 아동학대 의심만으로 제3자에 의한 몰래 녹음을 합법화하는 방식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교총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교원은 언제든 녹음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교육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교육적 목적의 언행과 교실 상황을 상당히 왜곡하거나 짜깁기할 위험도 있다"고 주장했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은 해당 개정안을 '학교 도청법'으로 규정하고 "교육 현장의 신뢰를 파탄 내고자 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을 사과하고 법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역시 "지금까지 타인 간 대화 녹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수사기관의 영장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허용됐다"면서 "개정안은 이미 과도한 (아동학대) 신고와 수사로 고통받는 교사들을 녹음 파일 하나로 학대 가해자로 몰 수 있다"고 반발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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