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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쿠팡은 악덕 기업인가

입력 2025-11-21 17:25   수정 2025-11-22 00:22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모두 받은 2020년작 ‘노매드랜드(NOMADLAND)’는 밴에서 먹고 자며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금융위기로 평생 일한 건축자재 회사 US석고가 망하고 사택마저 사라지자, 60대 여성인 주인공 펀은 전 재산을 털어 산 밴을 타고 떠돌며 일하는 삶을 택한다. 남편을 잃은 깊은 상실감에 자주 침잠하지만,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로 자신을 규정하며 자존적 삶을 이어 나간다.

나온 지 꽤 된 이 영화를 떠올린 건 ‘또 쿠팡 논쟁이구나’ 하는 최근의 생각과 관련이 있어서다. 배송 또는 물류센터 노동이 이슈로 떠오를 때면 쿠팡은 어김없이 최전선으로 끌려 나온다. 그리고 쟁점은 주로 ‘비인간적 대우’ ‘살인적 노동 강도’ 같은 노동조합의 비판적 프레임에서 출발한다. 과연, 쿠팡은 그렇게 악독한 기업일까?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름의 단초를 제공한다. 쿠팡이 벤치마킹한 아마존이 극 중 일터로 비중 있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구직이 절박했지만, 금융위기 가운데 특별한 기술이 없는 고령의 여성을 고용하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아마존(물류센터)은 달랐다. 해마다 일정 기간 그를 고용하며 월급을 주고, 버거운 캠핑장 사용료도 대납한다. 사회 안전망 붕괴에 관한 ‘사회파’(?) 영화지만 왠지 아마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충분치는 않더라도 아마존이 주는 봉급은 주인공이 자존적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게 분명하다.

쿠팡과 관련해서도 의외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장면을 엿본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힌 1990년대 아이돌 가수는 자신이 쿠팡 새벽배송 기사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밤 11시에 출근해 새벽배송을 마치고 퇴근한 그는 ‘비인간적 노동’과는 거리가 먼 표정으로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벌 수 있고, 이 일을 한 뒤 정신적으로 밝아졌다”고 했다.

아마존이나 쿠팡의 존재감은 주로 익일배송, 무료 반품 같은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조명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들 기업은 복지 제도가 채우지 못하는 빈틈을 ‘무차별·상시 채용’이라는 형태로 메우는 중이다. 삶을 윤택하게 바꿀 정도는 못 되겠지만, 기존 노동시장에서 내몰린 이들에게 최소한 버팀목 정도는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육아나 학업, 이직 등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들 또한 진입 장벽 없이 드나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물류센터 일에 잔뼈가 굵은 20대 남성 후배는 “다른 택배사에 비하면 쿠팡은 지원자가 몰려 자리(TO)가 없을 정도로 환경이 괜찮다”며 “돈이 필요할 때 바짝 일하면 제법 괜찮은 봉급을 쥘 수 있는 유용한 일자리”라고 했다.

특히 이들 기업의 물류센터는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에 있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안전망 또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공단 데이터에 따르면 올 8월 말 기준 쿠팡의 직고용 인력은 9만 명을 훌쩍 넘어 10만 명에 육박한다. 일자리가 절실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앞다퉈 쿠팡 물류센터를 유치하려고 하는 이유다.

쿠팡은 임대업 수준에 머물던 기존 유통업을 일종의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바꿨다. 조(兆) 단위 투자를 통해 대형 설비(물류 인프라)를 구축했고, 여기에서 익일배송이라는 전에 없던 서비스를 생산한다. 하지만 투자 대비 수익성은 여전히 낮다. 작년 연간 매출 대비 순이익률은 0.5%에 불과하고, 주가순이익비율(PER·이익 대비 주가 수준)은 약 133배로 터무니없이 높다. 애초 높은 주가에 상장한 탓도 있다. 하지만 기대만큼 이익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는 해석도 맞다.

쿠팡은 자선단체가 아니라 영리기업이다. 쿠팡의 등장으로 우리는 더 편리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됐지만 동시에 ‘손가락질’할 기회도 엿보고 있는 것 같다. 7~8년 전쯤, 기존 대기업 유통사 직원이 “쿠팡 사업 모델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고했다가 임원에게 왕창 깨졌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쿠팡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기존 유통산업 질서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더 행복했을까? 영향력이 과도해지거나 독점으로 치닫는 건 경계해야 하지만, 이 기업을 향한 비판이 때론 시장경제의 혁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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