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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투자 읽어주는 남자] 한국 배출권거래제, 투자시장으로 거듭날까

입력 2025-12-03 06:01  

[한경ESG] ESG 투자 읽어주는 남자


“이번엔 정말 다르다.”

한국 배출권 시장을 10년 넘게 지켜본 투자자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2025년 9월, 4차 배출권거래제(2026~2030)의 세부 설계가 공개되면서 시장 분위기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그동안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K-ETS(한국 배출권거래제)가 진짜 투자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4차 배출권거래제는 글로벌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앞두고 전 세계는 NDC35(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에 애를 먹었다. 각국의 경제 상황과 산업 경쟁력 우려 속에서 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더 강화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전진 원칙(progression principle)은 지켜졌다.

한국의 4차 배출권거래제 역시 이 원칙을 따른다. 발전 부문의 유상 할당 비율은 현재 10%에서 2030년 50%까지 확대된다. 발전 외 부문도 10%에서 15%로 상향됐다. 다만 철강과 석유화학처럼 수출 중심의 탄소누출 우려 업종은 여전히 100% 무상 할당을 유지한다. 국제경쟁력 보호 차원이다.

그러나 100% 무상 할당이 과연 지속가능한 정책일까? EU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은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수입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에 대해 비용을 부과한다. 무상 할당받은 기업이라도 유럽연합(EU)으로 수출할 때는 탄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NDC35를 보면 이 흐름은 더욱 분명해진다. 글로벌 감축목표가 강화되면서 무상 할당 비중은 점진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4차에서는 100% 무상 할당이 가능하지만, 5·6차로 갈수록 배출권 공급량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이 점진적 감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기업의 미래를 가른다. 이미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기업도 있다. 철강업체들은 전기로를 건설하고 수소환원제철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일부 화학 기업은 시장가격보다 높은 내부 탄소가격(ICP)을 적용해 투자 검토 단계에서부터 규제 비용을 선반영한다. 이 같은 선제적 대응은 기업가치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탄소비용을 단순한 부담으로만 보는 기업과 기술 전환의 기회로 보는 기업의 밸류에이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위탁매매 시스템과 선물시장 출시가 변화 주도

그동안 한국 배출권 시장은 할당 기업만의 리그에 가까웠다. 연간 거래 규모가 5000억 원에 불과했고, 유동성도 매우 낮았다. 제출 기한 직전에만 거래가 몰리는 ‘벼락치기 시장’이었다. 하지만 2월 7일부터 가동된 위탁매매 시스템이 판을 바꾸고 있다.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사는 이제 주식을 사듯 증권사를 통해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다. 2025년 2월 시행령 개정으로 금융기관의 시장 참여가 허용된 결과다.

더 큰 변화는 2026년 예정된 선물시장 출시다. 레버리지 거래와 헤징이 가능해지면 시장 유동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배출권 ETF나 ETN 같은 금융상품도 선물시장이 자리를 잡은 뒤 본격적으로 출시될 전망이다. 이미 EU에서는 다수의 EUA 추종 ETF가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투자 기회도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배출권 현물·선물거래를 통한 시장 참여가 있고, 간접적으로는 관련 생태계 기업에 대한 투자가 있다. 위탁매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들은 거래 수수료와 컨설팅 수익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기업 탄소배출 관리 플랫폼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은 측정·보고·검증(MRV) 수요 폭증에 힘입어 고성장하고 있다.

2024년 COP29에서 파리협정 제6조가 최종 타결됐다. 이제 ITMO(국제적으로 이전된 감축 성과) 거래가 본격화될 기반이 마련됐다. COP30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벌 통합 탄소배출권 시장 구축이 논의되고 있다. 각국의 탄소시장이 서로 연결되고, 배출권 거래가 국경을 넘어 활성화되는 미래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ESG 투자자와 경영자 모두에게 장기 전략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단기적으로는 위탁매매 시스템을 활용한 배출권 시장을 학습하고, 소규모 포지션을 구축해보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중기적으로는 CCUS(탄소포집 및 활용·저장) 기술과 녹색 수소 인프라 기업, 에너지 효율 솔루션 기업이 유망하다. 장기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 같은 혁신기술 기업과 탄소배출 관리 플랫폼 스타트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탄소시장은 10년간 ‘잠자는 시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4차 배출권거래제는 이 판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전진 원칙에 따라 5·6차로 갈수록 규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금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과 투자자만이 이 구조적 전환의 수혜를 누릴 수 있다. 한국 탄소시장은 이제 ‘진짜’ 투자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김준섭 KB증권 ESG리서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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